10.17
느즈~~~막히 일어났다. 혼자 묵는 방을 쓰게되면 또 습관처럼 늘어지는 내 모습 어쩔 수 없다. 니스에서는 부담없이 쉬고가자는 생각을 한번 하고나니 밖에 나가는 시간보다 내 옥탑방같은 이 호텔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1층 식당으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아침을 먹고있다. 응? 여기 아침 주는건가? 역시 아니지. 4유로에 핫음료, 크로와상, 바게트, 씨리얼을 주는데 얼결에 나도 사먹고 말았다. 멋모르고 아침 달라고했는데 아 4유로라니 빈 움밧에서도 3.5유로가 비싸서 결코 호스텔 아침은 안 사먹었는데.. 점심까지 싸갈 생각으로 아침은 씨리얼을 두그릇이나 먹고 크로와상과 바게트는 쟁여놨다. 내가 어제 아무 생각없이 간식으로 아작아작 먹은 저 씨리얼이 돈주고 사먹어야 되는거였다니 ㅋㅋㅋ잘먹었네
모닝 카푸치노 한잔 하며 인터넷을 했다. 와. 아침 커피 정말 좋다. 피렌체에서 대충 타먹는 인스턴트커피가 아닌 이렇게 제대로 뽑아주는 커피를 마셔본게 언제더라ㅠㅠ 카푸치노 한 모금에 눈물이 난당..
오늘은 마르세유 갔다오는 기차랑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는 기차랑 바르셀로나 호스텔까지 예약해야해서(카톡도 하며) 나는 오전 내내 식당에 앉아 노트북을 붙잡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갈 곳 없어서 컴터나 하고 있는 찌질이 같아보였나부다.
- 나 친구랑 지금 저기 시내나 나갈까 하는데..
- 어? 응 근데?
- 너 같이 갈래? 너 여기 계속 처박혀있길래 (stuck in a whole day라는 표현을 썼다!)
- 아.. 나 컴터로 좀 할일이 있어서. 괜찮아 고마워^^
- 아 그래? 오키
와 stuck in a whole day란다. 난 여기 stuck되어있는 애처럼 보였나..
하긴 그 아이들의 눈에는 이 아름다운 니스까지 와서 컴터랑 스마트폰 양손에 끼고 시시덕거리고 있는 내가 안되보였을 수 있다.. 신경써줘서 고마워 근데 바르셀로나가 날 너무 골치아프게 해서 내가 지금 딥고민중이야ㅠㅠ 마음만은 고맙다.
바르셀로나. 최대의 난코스다.
내가 검색한 도시중에 젤 많은 호스텔이 있는 것같은데 정말 마음에 드는 곳이 없거나 마음에 들면 꼭 하루가 방이 없었다. 또 니스에서 바르셀로나 구간이 기차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라서 갈아타기를 5번 쯤 해야되거나 아님 몽펠리에에서 직행열차가 하루 한대 있는데 무려 아침 7시 반 기차라서 몽펠리에에서 하루 묵지 않으면 탈 수가 없었다.
하루 묵는건 괜찮은데 몽펠리에에 호스텔이 없었다. 무조건 호텔.호텔!호텔!!! 최악의 상황이다. 나는 어찌됬건 베르셀로나를 가야하는데..
오늘의 일정은, 바르셀로나 기차를 예약하고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미술관을 다녀오는 것.
월요일이라 니스근현대미술관이 휴관하기 때문에 나는 니스에서 하루를 더 있으면서 내일 니스근현대미술관과 마르세유를 다녀오기로 했다. (이땐 이렇게 결정했었다) 오전 내내 검색을 하고 거의 낮 12시가 넘어서 호스텔을 나와 역으로 갔는데 줄이 장난아닌거다. 30분을 기다려서 겨우 정말 귀찮은 표정과 말투의 역무원 언니와 마주했다. 내가 오늘 오전을 다 허비해서 검색해간 기차시간표는 예약이 다 찼다는 이유로 싸그리 무시당하고(망할 유레일ㅠㅠ 예약좌석 겁나 적고 입석표인 주제에 서서도 못가게해ㅠㅠ) 무려 새벽 5시 56분에 출발해서 기차를 4번이나 갈아타고 가야하는 희대의 난코스로 예약을 해주었다. 눈앞이 까마득하다. 기차 놓치는거라면 내가 또 선수인데. 여기서 기차 하나라도 놓치면 나는 망. 생각만해도 절로 오금이 저렸다. 귀찮은 언니는 그래도 예약봉투에 갈아타야하는 구간을 일일이 적어주며 스페인에서 표를 사야하는 마지막 구간의 기차시간까지 꼼꼼히 적어주는 친절함을 발휘했다. 메르씨! 이것만 있으면 난 두렵지않아!
그리고 이게 이틀후 그 사건의 복선이 될 줄은 몰랐다.
거의 2시가 넘었다. 마티스 미술관까지 트램 6정거장인데 큰 길따라 곧장 가는 거라 이 길을 쭉 그냥 걸어가기로 한다. 여기 사람들은 내가 지도를 조금만 보고있을라 치면 아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난다. '나에게 물어봐줘, 뭐든 가르쳐줄게 내번호도^^^'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물어보기가 조금 거부감이 든다. 또 자꾸 남자들이 '니하오'거리면서 말거는 것도 이제는 무시하다못해 짜증이난다. 영국에서는 절대 이런일이 없어서 물어보는건 무조건 훈남 런더너를 찾았었는데 이제는 물어보는건 남자들한테는 물어보고싶지 않다. 젊은 여성분들이나 아님 그냥 역무원, 경찰관 등 소속이 확실한 사람들한테만 물어보게 된다. 니스 첫날에 그 프렌치날라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다 그런 부류들 같고, 지나가다 운전석 창문 너머로 휘파람을 불거나 봉쥬하거나 할로하는것도 지겹다. 이런 성희롱에 좋던 기분도 나빠진다. 동양사람 못봐서 환장을 했나, 한달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고 기분이 별로다. 아니, 도대체 왜 익숙해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티스 미술관은 니스 중앙역에서 북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시미에 지구에 있다. 니스에서도 부촌이라는 시미에 지구. 걸어보니 알겠더라. 어느 나라를 가나 잘사는 사람들은 윗쪽 동네에 산다고(달동네말고) 완만한 경사를 따라 슬슬 걸어올라가니 깔끔한 니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종려나무에서도 여유가 뚝뚝 떨어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라일락향기도 풍겼다. 햇살이 구름에 가린 선선한 날에 라일락향이 나는 경사길 오르며 니스 시내를 내려다본다. 니스는 정말 나에게도 여유로운 도시다!
이제는 걷는데에 아주 자신과 재미가 붙어서 트램 6정거장 따위 삼사십분쯤 걸으면 금방이다. 공원이 보이고 눈앞에 적갈색의 그림같은 마티스미술관이 나타난다. 공원에는 할아버지들이 주먹만한 쇠공으로 구슬치기 비슷한 게임을 여기저기 무리지어 하고 계셨는데(아마도 게이트볼인듯 하다) 그 모습이 또 니스의 부촌과 연결되면서 와 노년에 미술관 앞에서 친구들과 쇠공치기 게임이라, 이러면서 부럽부럽모드. 유럽에서 미술관을 다니면서 느낀건데, 유럽 미술관에는 내 또래 애들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더 많다. 아니면 선생님이랑 견학 온 어린이들. 유럽에 배낭여행오는 그 수많은 호스텔에 꽉꽉 들어차있는 서양 젊은이들은 모두 밤에 놀기위해 여행을 오는 것 같다. 가이드북 같은걸 들고 있는 애들도 본 적이 없고 인터넷 하는걸 봐도 뭘 검색한다기보다 그냥 페이스북하고 블로그같은걸 하고있다. 참.. 다른문화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할머니가 되면 나는 뭘 하고있을까. 어떤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을까. 여가생활을 즐기고 있기는 할까? 아니 할머니가 되기는 할까? 그 전에 죽는거아냐?
나는 이전에는 마티스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다기 보다 잘 모르기도 했고 그의 그림들을 많이 본 적도 없었고 퐁피두 등에서 마티스의 작품을 봤을 때에도 왠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림을 좋아하는 것 만큼의 미술사적 지식은 없어서 그림을 볼 때 이 작품이 담고있는 개념이나 작가의 사상같은건 잘 모르고 그냥 내 취향껏 골라보니까 마티스도 단지 내 취향의 그림이 아니라서 슥 보고 지나갔던 것 같다. 근데 여기서 나는 마티스라는 사람을 조금은 다시 보게 됐고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그림들보다 더 내눈을 끌었던 건 그의 습작들이었는데, 아니 어찌나 그 선들이 막 그은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섬세하고 쓸모없는 선이 하나도 없는지. 이 사람이 게이가 아닌가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친 남자의 손으로 이렇게 예쁜 선은 그릴 수가 없다고. 그리고 마지막 동선의 회랑에서 회랑의 앞, 뒤로 브릿지를 건너며 마티스의 대표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놓은 구성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 Free access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올레? 무료다, 이 미술관...
욤과 딱에게 줄 엽서를 샀다. 언젠가 욤스텔에서 욤이 마티스를 좋아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서 마티스의 댄스시리즈 중 하나가 담긴 엽서를 샀다. 딱에게 보낼 엽서로는 역시나 노랑바탕에 검정선ㅋㅋㅋㅋ 나는 딱을 떠올리면 이 이미지밖에 떠오르는게 없다. 그리고 그 검정선으로 그려진 얼굴이 '언니'를 조금 닮았기도하고ㅋㅋ
미술관을 나와 할아버지들이 게이트볼을 하고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게임을 지켜보며 아침에 싸온 크로와상과 바게트를 먹었다. 내 바로 앞에서 한 무리의 할아버지들이 게임을 하고 계셨는데 처음보는 내가 봐도 너무 못해서 도저히 이 무리의 게임을 하루종일 지켜봐도 이 게임의 룰을 알지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사람이 공을 세개씩 들고 차례대로 하나씩 던지는데 뭘 맞춰야되는건지 피해야 되는건지 멀리 보내야되는건지 알 수가 없다.
할아버지들이 거의 한번을 못맞췄기 때문에ㅠㅠ 한번은 빵을 먹고있는 내 발밑으로 공이 굴러와서 얼른 주워다 드렸더니 그 공의 주인 할아버지께서 내 두손과 공을 꼬옥 그러잡으시며 아주 온화한 얼굴로 '메르씨부끄^^~'하셨다. 아 부끄부끄 게임 못한다고 놀린거 죄송해요. 다시 빵을 먹다 생각해보니 주워다드리면면 안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맞춰서 멀리보내기 게임일수도 있으니까..
언덕길을 따라 다시 내려와 마르크 샤갈 미술관으로. 정확히 말하면 마르크 샤갈 성서미술관이다. 샤갈은 아주 독실한 신앙심을 갖고 있어서 성서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 그림들을 모아놓은 미술관이다. 단층짜리 미술관 건물이 독특하다. 앞으로 라파엘 모네오의 후앙미로 미술관이 떠오르게 하는 외관이다. 니스의 미술관들은 (두 개밖에 안가봤지만) 다 자기의 작은 공원을 갖고있어서 들어설 때 참 기분이 좋다. 하필 나랑 같은 시간에 같이 표를 끊고 들어간 한~무더기의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나는 이 일본인무리 아니에요'표정을 짓고 있어야했다. 일본인들은 한-무더기가 와도 조용조용하다. 참 어딜가나 조용조용한 민족. 만약 중국인 한-무더기였으면 성서화 속의 예수님이 시끄러워하셨을 수도.
성서내용을 알고 왔으면 참 좋았을거다. 또 미술관 다니면서 느낀건데 고전이나 근대나 현대나 서양문화는 기본이 크리스챤을 바탕으로 깔고 있으므로 그 성경 내용을 알고 보면 백배천배는 더 재밌을거 같다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기독교는 아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성경이야기는 꼭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서양미술사도. 그리고 플로렌스책도ㅠㅠ 이제와서..
오디토리움 벽에는 샤갈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었는데 샤갈만의 독특한 화풍이 스테인드 글라스가 되어서 빛까지 담고 있으니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 스테인드 글라스가 그대로 성당을 장식하고 있었더라면 더 환상적이겠지. 그 성당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던 그것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마르크샤갈의 성서화보다 그 옆방의 컨템퍼러리 전시가 나는 더 재미있었다. 샤갈의 작품은 내가 그 속의 이야기를 모르기 때문에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컸는데 그 옆에 컨템퍼러리 전시는 그 속이야기를 몰라도 표현방식이나 작품 자체가 재미있었다. 역시 프랑스, 9.5유로나 하는 마르크 샤갈미술관을 아트스튜던트 적용해서 쿨하게 0.00유로 찍어주신다. 그래 프랑스, 난 이게 그리웠어..
아침에 늦게 나오고 역에서 줄도 길게 서고, 트램 안타고 걷기까지 해서 6시에 클로즈하는 샤갈미술관이 촉박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미술관 다 둘러보고 나오니 5시 였다. 파리, 빈까지만 해도 나는 하루에 미술관 세 개쯤을 일정에 넣으며 아주 쉴틈없이 아침 9시에서 저녁 8시까지 발이 퉁퉁 부어라고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빠져가지고 12시에 슬그머니 나와서 미술관 두어개 돌아보고 이제 5신데 피곤해 집에가야지~ 이러고 있다. 이런 여유도 니스에서가 마지막이다. 이미 완벽히 내 옥탑방처럼 어질러진 호텔방에서 미뤄놓은 속옷 빨래를 다 하고 널 수 있는 온갖 곳에는 다 넣어놓은 다음 욤과 딱에게 엽서를 썼다.
내일은 마르세유 가는날. 아직도 근현대미술관을 먼저 다녀올지 마르세유를 먼저 다녀올지 결정하지 못했다. 예전같으면 이런거 곧죽어도 다 확실히 해놓고 잘텐데 이제 아주 빠져가지고 내일 아침에 땡기는대로~ 하고 자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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