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1 스물셋,혼자떠난 유럽배낭여행일기

@1021_유럽여행33,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까사 밀라(라 페드레라), 안토니 타피에스 재단)

모나:) 2018. 4. 10. 11:59

10.21

 

 

 

일어나보니 룸메이트들은 언제 들어왔는지 쿨쿨 자고있다. 살금살금 씻고 준비를 하고 식당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받았다.
따끈따끈 갓 뽑은 크레마가 가득한 커피와 바게트, 작은 머핀 그리고 오렌지쥬스. 아주 간단한 식사지만 나에게는 이것도 무한감사감사ㅠㅠ 아침에 이렇게 따뜻하고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다니, 온 몸에서 행복행복빔을 발산중이다.


관광으로 가장 가고싶은 도시로 바르셀로나가 1위로 뽑혔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가우디의 도시'니까, 뭔 말이 더 필요함? 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완성시킨 도시라고 말해도 아마 아무도 반기를 들지 못할 거다. 그만큼 곳곳에 가우디의 흔적이 있고 그 흔적으로 먹고사니까. 마치 여느 다른 건물들과 같이 정말 자연스럽게 주변에 녹아들고 있으면서도 단연 돋보이는 가우디의 건축이 거리를 걷다보면 정말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를 놀라게 한다. 가우디투어를 하지 않고서는 감히 바르셀로나에 가봤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은 본격적인 바르셀로나 여행의 첫날. 내 일정의 우선 순위는 무조건 가우디다.

산츠역에 들러서 화요일 마드리드 행 10시 기차를 예약하고 Lessep역으로 향했다. 메트로 10회권에서 벌써 어제 3번을 쓰고 오늘도 3번을 쓸 예정. Lessep역에 내리니 구엘공원 가는 표지판이 바로 눈에 띈다. 이 거리는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과는 또 다르구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구엘공원 후문 쪽을 오르는데 벽에 낙서가 눈에 띈다.

Tourist go home! 나... 집에 가야돼ㅠㅠ? 내가 아주 유명한 관광도시에 사는 사람이라고 상상해본다. 휴일이면 도시 곳곳 명소마다 사진찍는 외국인들로 그득그득하고 아침마다 지하철은 늘 만원. 밖엘 나가면 도대체 누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제각기 다른언어로 지껄이는 도시. 내가 여기 사는 사람인데 내가 사는 곳을 빼앗긴 기분이랄까? 로마나 파리 사람들이 관광객에게 불친절한 이유는 이것일 수도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관광객들에게 빼앗겨서. 로마는 특히나 심해서 일주일(확실하지 않음)에 로마에 머무르는 관광객 수만해도 우리나라 인구만큼이라고 하니 말다했다. 내가 세금내는 도시의 지하철에서 온통 관광객들로 인해 단하루도 앉아서 출퇴근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관광이 주 수입원인 도시라고 해도 관광객들이 싫은건 어쩔수 없는 사람의 마음일거. Tourist go home이라고 쓴 누군가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왠지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정말 방해하지 않고 난 지하철도 서서타고 왠만하면 걷고 개념있는 여행자가 될께. 미안해.

구엘공원에서 돌기둥을 스케치하고 있는데 중학생 쯤 보이는 학생들이 지나가다가 우르르 몰려와 스케치를 구경한다. 앗, 창피하다. 돌을 표현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대충 막 그리고 있는데 이렇게 우르르 구경을 하다니, 중딩한테 무시당할까봐 고개도 못들고 스케치에 열중했다. 흩어지는가 싶더니 돌기둥 위쪽에서 곤니찌와,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남학생 두명이 날보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이고 귀여운것들. '안녕?'했더니 쟤 뭐라는거야 표정을 짓는다. 뭐이자식아 나 코리안이거든. 스케치를 다 마칠때까지도 안 가고있던 그 남자애 둘에게 웃으며 바이바이 해주고 공원을 나섰다. 스케치를 하고있으면 꼭 한 명은 와서 말을 건다. 그게 참 쑥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그러타. 내가 더 잘그렸다면 막 이것좀 보라며 자랑할텐데. 암튼 그러타. 구엘공원의 옥상(?)은 정말 가볼만 하다. 꼬불꼬불지는 형태와 패턴들에 둘러싸여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을 내려다보는 그 기분. 훈데르트바서의 꼬불거림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가우디의 모자이크 타일패턴은 너무나 아름답고도 유명해서, 기념품점에는 이 타일문양을 참 많이 팔고 많이 산다.

바르셀로나시내를 내려다보는 곳에서라면 누구나 사진에 시내전경과 함께 꼭 같이 담고 싶어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다. 성 가족성당. 예수님의 가족성당.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족과 시민들의 성당. 120년동안 짓고 있고 지금도 공사 중이며 가우디 사후 100년이 되는 2026년에 완공 예정이라는 그 전설의 성당이다. 가우디는 그의 마지막 40년을 이 성당 건설을 위해 바쳤는데 결국 완공을 보지 못하고 전차에 치여 사고사하고 말았다. 근데 아직도 짓고 있으니 150살을 넘게 살았어도 완공은 못 봤을거다. 소설 '가우디 임팩트'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수많은 알레고리를 지니고 있었는데 실제로 본 이 성당에서 나는 그 중 아무것도, 단 한개도, 심지어 정문 기둥 밑 거북이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시간제한이 있는지 어쨌는지 암튼 성당 주변을 다 막아놓아서 파사드 앞에는 접근도 하지 못했을 뿐더러, 파리의 노트르담처럼 성당 앞에 광장이 있는게 아니라 차들이 쌩쌩 다니는 도로에 맞닿아 있어서 이 큰 성당을 멀찍이 올려다 볼 공간조차 없었다. 내부는 커녕 외부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하늘로 솟은 거대한 옥수수 4개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래도 파리의 노트르담, 피렌체의 두오모와 함께 바르셀로나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다. 어디에서 바르셀로나 시내를 내려다보아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꼭 프레임 안에 들어오게 되어있다. 사그라아 파밀리아 옆 기념품샾에서 가우디의 모자이크 타일무늬 엽서 두 장과 가우디 책 한 권을 샀다. 근처 카페 illy에서 오늘은 아주 사치를 부려 점심으로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으며 엽서를 썼다. 내 가족에게, 그리고 꽁이에게. 끝에는 조그맣게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그려넣었다. 이 엽서를 받고 내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디아고날 대로를 걷는다. 바르셀로나는 내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있다. 나는 이 정열의 도시가 이렇게 깨끗하고 널찍널찍하며 질서정연할 줄 몰랐다. 조금은 서울의 모든 것이 응집된 모습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의 대로에 서서 반대편을 바라보면 내 시아에 걸리는 거라곤 끝없이 쭉뻗은 도로와 만나는 수평선 뿐. 뉴욕의 맨하탄보다 훨씬 더 잘 그려진 바둑판 블럭 앞에서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는 도시가 바르셀로나다. 진짜 T자 대고 똑바로 줄그어 놓은 것처럼 도로를 이렇게 만들어놓다니, 내가 방문한 그 어느 도시보다 바르셀로나처럼 지도랑 똑.같.이 생긴 도시는 없을거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네 이거이거.

라 페드레라. 까사 밀라. 밀라씨의 주택. 가우디의 초기 작품인 까사밀라에 입장한다. 난 아트티켓 있는 몸이므로 남들 다 긴 줄 설때 그 옆으로 보란 듯이 바로 입장한다. 관광지에서 깨알같은 쾌락은 이런 데에 있다. 우하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서부터 가우디 스페이스, 샘플 아파트 순으로 보면서 내려온다. 구엘공원도 그렇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그렇고, 가우디 공부 좀 하고 올걸 하는 생각이 절실하다. 사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거의 책임지다시피하고 있는 불굴의 천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독특함 때문에 근대건축사조에서 비주류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 가요계에 비유하자면 르 꼬르뷔지에나 미스 반 데어로에는 HOT나 GOD쯤 될까? 그들이 한국 아이돌의 대표격이라면 가우디는 매니아층을 거느리는 홍대 인디밴드들의 전설..지금은 생각안나니까 일단 패스하고 암튼 이런 비유가 가능할 것 같다. 요새 잘나가는 렘 쿨하스는 소녀시대쯤 되려나ㅋㅋㅋㅋ

까사 밀라의 옥상은 하나의 공원이다.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굴뚝을 통과했다가 중정도 내려다 봤다가 바르셀로나 전경도 감상한다. 역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포함이다. 사람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굴뚝 사이로 보였다 안보였다, 모두들 너무 즐거워한다. 놀이터에 놀러온 어린이들마냥 이 공간 하나에 모두 웃음지으며 사진을 찍고 거니는 모습을 보고있으니 가우디란 사람은 정말 '순수'했던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80평생을 홀로 건축에만 몰두하며 깊은 신앙심으로 살았던 천재. 가장 순수한 형태는 자연 그대로이다, 가우디는 이렇게 생각했을 거다. 같은 근대건축가지만 르 꼬르뷔제가 생각한 가장 순수한 형태는 기하학이었던 반면 가우디는 산, 바다 등 자연 그대로라고 생각해서 그 형태를 표현한 건축을 했다. 단지 형태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건물이 서있는 구조 또한 그대로 자연을 닮았다. 자연이 보내는 힘의 흐름 그대로, 자연이 만들어낸 형태 그대로. 아마 그의 깊은 신앙심과 관계가 있었을까?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려는 마음 말이다.

옥상에서 내려와 가우디 스페이스에 들어섰다가 나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이후로 또 한번 천재성에 등골에 소름이 쫙 돋는 경험을 했다. 거대한 생물체의 몸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가우디는 자연을 모방하다 못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공간을 창조해낸 것이다. 구조 하나하나가 마치 공룡의 척추뼈같았고, 살아있는 생물, 아니면 생물의 화석이었다. 근대의 산물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 가우디 이런 천하의... 천재같으니.
까사 밀라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안토니 타피에스 재단이 있다. 나는 바르셀로나에 오기 전까지 안토니 타피에스라는 사람을 전혀 몰랐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현대미술작가이고, 까사밀라와 카탈루냐 미술관과 함께 그의 재단은 아트티켓에도 포함되어 있다. 갈색 벽돌 건물 위에 거대 실이 엉켜있는 듯한 설치작품 덕에 한눈에 타피에스 재단을 알아보았다. 나는 그 작품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스페인 예술은 어렵다는 생각을 가득안고 돌아오게 되었다. 그래도 타피에스 재단건물은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가 작품은 안보고 창문이니 벽이니 주위만 두리번거리니까 직원이 날 좀 이상하게 생각했다. 어쨌든 너무 사랑스러운 곳이다. 빨강 포인트를 가진 모자이크 창문이랑 보존 라이브러리까지 하나의 인테리어처럼 해놓은 것도 너무 마음에 든다.

타피에스 미술관을 막 나와서 카탈루냐 광장쪽으로 걷고 있는데 굉장한 훈남이 나에게 사그라다 파밀리아랑 라 페드레라 둘중에 뭐가 더 좋냐고 물어본다. 음, 이거 뭐 설문조사인가? 아 내가 또 관광관광 냄새를 풍겼나보다, 자책하며 난 당연히 라 페드레라가 더 좋았다고 대답하다가 이야기가 계속 이어져서 그 훈남과 나는 어느새 같이 길을 걷고 있었다. 이 훈훈한 아이는 자기를 데니라고 소개했다. 내가 '민주'라고 하자 코리안임을 알아본다, 와 완전 신기해. 유럽와서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코리안소리를 들었다! 감격해 마지않아서 어떻게 알았냐고 하자 이름보고 알았다면서 대학에서 International Business를 공부해서 아시아 쪽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내 눈을 보고 제패니즈인 줄 알았다고 했다. 아니 내 눈이 그렇게 쪽 찢어졌단 말인가, 외국인들은 날보고 차이니즈냐고 하고 일본인은 니혼진이냐고 하고 한국사람은 한국분이시냐고 하고, 내가 그렇게 범아시아적으로 생겼는 줄 유럽와서 처음 알았다. 어쨌든 데니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날보고 스위트페이스를 가졌다면서 날 수줍수줍하게 하더니 갑자기 그 애가 내 볼에 뽀뽀를 했다. 헉, 난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몸을 움츠렸다. 내가 어쩔줄 몰라하니 데니는 그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내 어깨를 토닥토닥하며 '너 긴장했구나'하는데, 얘는 진정 선수인가 싶었다. 내가 결코 누군갈 쉽게 좋아하지 않고 이런거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애라고 자부하는데도 이 짧은 순간에 나를 너무 잘 다룰 줄 알아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긴장한 이유는 또 있었다. 얘는 훈훈한 얼굴로 관광온 여자들을 등쳐먹는 알고보면 굉장히 나쁜놈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치만 그 애는 내 어깨를 토닥토닥한 것 한번을 제외하고 내 가방이나 옷이나 어느 곳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가방을 학교에 두고와서 더이상 같이 갈 수 없다면서, 자기네 대학 근처에 괜찮은 공원이 있는데 저녁에 산책이나 갈래? 했지만 나는 시계를 보며 6시 30분에 약속이 있다고 누가봐도 뻔한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내 소심한 마음이 '쟤를 따라가면 쟤네 패거리들이 널 둘러쌀지도 몰라, 바르셀로나는 무서운 곳이야, 너가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라지만 훈훈한 유혹에 빠지면 안돼, 쟤는 정말 착한 애일수도 있지만 조금의 여지도 너가 만들어선 안돼' 라고 속삭였다.
양 볼에 뽀뽀인사를 하고 카탈루냐 광장 앞 횡단보도에서 아쉬운 바이바이를 했다. 이런 흉흉한 세상에서 여행의 로맨스를 꿈꾼다는 건 철없는 여자애의 허황된 꿈일 뿐이다. 나는 이제껏 내 호스텔 방에 훈남훈남^^ 하며 핑크빛 로맨스 따위를 상상한 적도 있지만, 정작 이렇게 닥쳐오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난 말로만, 겉으로만, 그냥 내 상상 속에서만 그렸지 로맨스 따위가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또 내 자신이 바라지도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난 진짜 이 나이에 너무 현실적인게 아닐까 왠지 씁쓸해졌다.

호스텔로 바로 가지않고 람블라스 거리 주변을 배회했다. 겁도 없이 이 저녁에 람블라스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상점 구경을 하고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까르푸에서 내일 점심에 먹을 빵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호스텔의 주인 할아버지는 시크한 얼굴과는 다르게 완전 착하셔서 내가 no show 해서 어쩔수 없이 지불한 하루치 방값에서 10유로를 돌려주셨다. 그리고 여기서 난 남은 바르셀로나의 3일을 더 묵기로 했다. 오늘도 방엔 나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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