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오늘은 The last city, Madrid로!
어제 잘때는 분명히 나 혼자였는데 오늘 아침 눈을 떠보니 온 방안에 나도 들어갈만한(진심 레알) 크기의 배낭이 두 개, 또 작은 배낭들과 신발과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려있고, 벗고있는 남자의 노랑털이 숭숭한 상체가 보였다. 외국 친구들은 노랑머리일뿐만 아니라 털도 노랗다. 난 그게 좀.. 문화충격. 으익, 어제 거의 새벽 2시가 다 되서 잤는데 그때까지도 아무도 안 들어오더니만, 그래서 난 혼자인 줄 알고 온 방 안에 아직 덜마른 내 빨래와 속옷들을 죄다 늘어놓고 잤는데! 아 창피하다, 내 속옷들을 들켜버린 이상 얘네가 깨기전에 감쪽같이 사라지고만 싶다. 난 얘네가 이 말도 안되는 짐을 낑낑 가지고 들어와서 옷가지들을 널부려놓고 내 옆과 위 침대에 기어들어가는 동안 한치도 깨지않고 세상모르고 잤던거다. 내 무신경에 박수를. 내가 호스텔 믹스룸에서도 별로 고생하지 않고 잘 잘 수 있었던 건 나의 이 자랑스러운 무신경 덕분이다. 아, 뒤셀도르프의 그 코골이 친구는 내 이런 무신경마저 이겨버렸지만, 악 또 그때의 악몽이!
아쉬운 호스텔을 체크아웃한다. 맘좋으신 주인 할버지도 이제 빠이빠이. 또 보긴 힘들겠죠.. 정말 고마웠어요. 아침도 거르고 산츠역으로 좀 일찍 가있으려고 했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역 가까우니까 굳이 아침 먹고가라고, 커피라도 마시고 가라고 또 나에게 친절친절.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바르셀로나에서 젤 좋아했던 호스텔 모닝카페콘레체를 마셨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에 가는건 스페인의 초고속열차인 AVE타고 3시간이면 충분하다. 그 넓은 스페인이지만 초고속열차가 생긴 덕에 아주 쉽고 빠르고 편안하게 마드리드로 이동할 수 있다. 산츠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딱 알맞다. 플랫폼에 들어가려니 이건 무슨 공항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가방 X-Ray까지 찍고 하나하나 예약표 바코드까지 확인해가며 엄청 철저하다. 스페인이 원래 이런 곳이었나, 파리에서 스페인 국경 넘어올 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유럽기차타면서 가방 엑스레이 를 찍는건 처음이다. 아직 출발도 안했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배가 고프다. 아침 안먹고 왔으면 산츠역 도착도 전에 캐리어붙잡고 쓰러질 뻔했다. 다시한번 할아버지께 감사를! 흑흑
스페인 철도 렌페는 마치 비행기인 양 이어폰도 나눠준다. 파리에서 바르셀로나 국경 넘을때 받은 렌페 이어폰은 기차타는동안 그냥 대충 갖고 있다가 나도 모르는 새 내 가방에 들어가 있었고, 바르셀로나 호스텔 도착하고 나서야 그걸 알았다. 정말 고의가 아니었지만 다시 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왕 기념으로 간직할 생각이다. 뭐 또 한국가면.. 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이어폰 모르고 가져온거 미안해서 이번에는 아예 안 받았다ㅋㅋ 난 그래도 양심있는 관광객ㅋㅋ
마드리드의 아토차 역은 스페인의 또다른 거장인 라파엘 모네오의 작품이다. 내가 지금은 비록 캐리어를 끌고있고 호스텔을 빨리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마드리드를 떠나기 전 꼭 가벼운 몸으로 다시 와서 여유롭게 둘러봐줄꺼다. 바르셀로나 일라에서 맛본 모네오의 작품을 또 이렇게 금방 만날 수 있다니, 너무너무 감동스럽다. 호스텔은 아토차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Anton Martin역. 근데 이 역엔 서글프게도 진짜 리프트 하나, 하나 못해 에스컬레이터 하나 없어서 1달 반 동안 몸무게 늘어난 캐리어를 낑낑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내 오른 손바닥엔 그동안 캐리어를 이고지고 하느라 굳은살이 배겼다. 엉엉. 올라오니 호스텔이 코 앞. 리셉션에 흑인직원이 안녕하세요, 예뻐, 사랑해, 하며 깨알같은 한국말 자랑을 한다ㅋㅋㅋㅋ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나도 사랑해'해줬다. 아 흑인남자한테 사랑을 고백하다니ㅋㅋ
당연히 방에선 와이파이가 안되지만 이 호스텔도 느낌이 좋다! 지도를 보니 레나 소피아나 프라도 미술관,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그랑비아까지 다 걸어갈 수 있을 것 같고 심지어 아토차역도 걸어갈 수 있다, 와우. 아까 기차에서 마드리드에 가면 낮잠이나 늘어지게 자야지, 하고 생각했다. 내가 또 이런 계획은 잘 지키는 애라서 짐 풀자마자 진짜 알찬 낮잠을 잤다. 아, 스페인이니 시에스타라고 해줘야지, 크크. 이 시간만큼은 난 놀치의 모토를 아주 충실히 따랐다. 오른쪽으로 누워서 잤는데 눈 떠보니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그대로였다. 몸 뒤척일 에너지조차 난 내 시에스타에 모조리 쏟았다. 아! 알차!
꿈을 꿨다. 내동생 선규랑 나랑 어딘가에 있는데 선규가 무슨 좀 어려워보이는 스포츠 같은 걸 도전하고 있었다. 나는 선규 잘해, 이러면서 응원을 하고 있었는데 선규가 너무 어이없게 실수를 하고 만거다. 뭐 저런 바보가 있나, 난 꿈속에서도 좀 화가 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어 했는데 선규가 속상했던지 막 우는거다. 아이고 어린 것, 18살이어도 나한텐 아직 애다. 내 무의식에서도 선규는 아직 애라서 키는 183cm인 애가 너무 서럽게, 마치 바지에 오줌싸서 울고있는 사진 속 4살 아기처럼 뽀송뽀송한 얼굴로 막 울었다. 눈을 떴는데 이게 무슨 꿈인진 모르겠지만 너무 생생했다. 우리 뽕구리 보고싶다. 꿈 속이지만 애가 우는걸 보니 마음이 안 좋다. 무슨일 있는건 아니겠지, 셤 못봐서 우는 꿈인가, 왠지 걱정이 된다. 이대로 오늘은 밤까지 잘까 생각했는데 점심도 안먹고 자서 배도 고팠고 생생한 꿈까지 꾸고 나니 잠이 더 오질 않았다. 호스텔에서 젤 가까운 레나소피아나 가 볼 생각이었다. 레나 소피아는 평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무료입장이니 슬슬 걸어가서 저녁 때우고 입장하면 될 것 같았다. 내사랑 까르푸를 찾았지만 변변한 마켓 하나 찾질 못하고 버거킹에서 2유로짜리 더블치즈버거로 저녁을 때웠다. 근데 또 하필 오늘이 화요일이고 레나소피아는 화요일에 휴관이다. 아니 무슨 미술관이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에 휴관이람? 멍청하게도 문앞까지 가서 경비원한테 웃으며 입장을 거절당하고 나서야 알았다. 허탕쳤네. 이제는 하루에 두시간 이상 걷지 않으면 이상하게 몸이 찌뿌둥하고 어떻게든 움직여야할 것만 같은 느낌이라 레나소피아는 허탕쳤지만 그래도 시내로 나온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 근처 주위를 배회하다 9시 쯤 호스텔로 들어왔다.
오늘 알게 된 호스텔 친구들
1. 다니엘
내 침대 맞은편. 미국 인디애나에 사는데 최근에는 텍사스에서 몇 년 살았다. 스페인에는 Job interview때문에 왔고, 사회학전공, 난독증 어린이를 돌보는 리딩스페셜리스트가 될 거라고 했다. 처음 접해보는 직업군이어서 호감이 갔다. 내가 호스텔에 막 도착했을때, 다 나가고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꽤나 쌀쌀한 가을 날씨에 너무 추워서 나가기 싫다고, 추운건 질색이라면서 이미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을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찬 시에스타를 즐기고 일어났을때 나가고 없더니, 좀 전에 들어와서 샤방샤방 플로랄 원피스로 갈아입고서 드링킹한다며 흥얼거리며 외출을 했다. 신발을 산더미같이 챙겨왔다.
2. 마리아
미국에서 일하고 있고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오, 김치! 하면서 김치 좋아한다고 했다. 그런데 어쩐지 나한테 곤니찌와 하면서 인사를 했다. 한국친구가 있어서 김치를 좋아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친구가 재패니즈이거나, 이 아이는 지금 한국과 일본을 헷갈리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컨버터를 빌려달라고해서 이태리여행을 같이 했던 상훈한테 받은 것을 그냥 쓰라고 주었다. 스페인은 220v를 쓰고 난 이제 한국으로 갈 거니까! 한국어 인삿말을 정정해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좀 전에 캐리어끌고 Thank you for everything하며 체크아웃을 했다.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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