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1 스물셋,혼자떠난 유럽배낭여행일기

@1007_유럽여행19, 빈>베네치아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쿤스트하우스 빈, 제체시온, 클림트, 야간열차)

모나:) 2018. 3. 30. 13:58

10.07

 

 

빈에 머무르는 3일동안 내 방에는 아무도 체크인하지 않았다.
난 하루 18유로를 내고 화장실도 딸린 6인실을 혼자 펑펑 다 차지하고 속옷바람으로 전신거울도 보고 테이블도 혼자 독차지해서 아침도 여유있게 먹어가며 아주 누비고 다녔다. 나같이 짐 늘어놓고 쉴새없이 부스럭거리는 애는 혼자 방쓰는게 최곤데. 그 사치를 빈에서 다 누리는구나! 다만 와이파이가 전.혀. 안되서 침대에서 편히 노트북을 하지 못하고 저녁에는 늘 로비에 내려가 있을 수 밖에 없었지만 혼자 자는것에 익숙한 나는 이 방이 얼마나 편했는지, 떠나는 시간이 너무 아쉬웠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하늘을 보아하니 오늘 하루종일 내릴것만 같다. 바람도 불고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여행와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우중충한 날씨다. 나는 또 캐리어 무게를 줄여보겠다고 유럽와서 갖고 온 우산을 버리는 미친짓을 저지른 상태였다. 우산을 새로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우산을 사면 왠지 곧 비가 그쳐서 내가 유럽을 떠나는 날까지 비가 다시는 안 올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우산을 안사고 비를 맞고 다니자니 하필 오늘은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씻지도 못하고 야간열차를 타는 날이었다.

빈 움밧은 10시 체크아웃을 매우 강조해서 와이파이 비번까지 checkout10am이었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한다. 일단 10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검정 후드를 쓰고서. 5유로 미만인 우산이 있으면 사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4.90인 우산을 발견했다. 너무 금방 발견해서 좀더 가다가 3유로 미만인 우산이 있으면 사야지, 하다가 결국 그냥 비를 맞기로 하고 빈 서역 코인라커에 캐리어를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나왔다. 캐리어도 없겠다, 후드 쓰고 있으니 이정도 비 쯤이야 뭐 맞아도 괜찮겠다 싶다.


어제는 클림트, 오늘은 훈데르트 바서에 빠지는 날이다. 오늘 같은 날은 오래 걷기엔 무리여서 처음으로 메트로를 탔다.

호스텔에서 준 빈 시티맵은 이제 헤질대로 헤져서 군데군데 찢기고 젖었다 말라서 쭈글쭈글 울고 난리다. 그래서 더 정겹다. 내발로 뚜벅뚜벅 샅샅이 걸어다닌 빈이 더 친숙하고 정감이 간다. 메트로에서 내려서 좀 헤매니 돌연 갑자기 훈데르트바서 하우스가 나타났다. 꼬불꼬불 알록달록 벽에서 나무들이 자라고있는 그 하우스. 우선 기념품샾 겸 카페가 있어서 들어갔다. 여기도 훈데르트, 저기도 훈데르트. 훈데르트바서의 체험은 참 알록달록 환상적이다. 방명록에 끄적끄적 낙서를 하고있으니 점원이 뭐 마실거냐고 물어본다. 음.. 쌀쌀한데 이왕 커피나 한잔 마셔야겠다. 멜랑게 한잔 줘요 언니. 빨간 커피잔에 각설탕 하나 초콜렛 하나와 멜랑게가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추운날에 초콜릿 한입 깨어물고 멜랑게 한모금 마시니 온몸이 녹아서 꼬불꼬불 훈데르트바서의 선처럼 꼬불꼬불 녹아버릴 것만 같네요.
아쉽게도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현재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인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재밌고 활기찬 사람들일 것 같다. 바서하우스 바로 앞에는 기념품샾 쿼터(내가이름붙임)가 있었는데 요기도 바서스타일이어서 계단이며 발코니, 벽, 화장실 앞 분수까지 말랑말랑 너무 귀엽고 이뻐서 난리였다. 기념품들도 아기자기. 초콜릿, 커피, 탁상시계, 사고싶은게 너무 많아서 꾹 참아야만 했다.

 

쿤스트하우스 빈은 훈데르트바서하우스에서 두블럭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다. 가는길도 깨알같이 재미나다. 꼭 가보시길! 블랙과 화이트 ,구불구불한 바둑판의 쿤스트하우스. 비가 계속 오고 있었다. 내방 벽을 장식할 쿤스트하우스의 기념엽서를 하나 샀다. 나는 오늘 훈데르트바서에 음푹 빠졌다. 쿤스트하우스 빈은 쿤스트하우스가 아니라 그냥 또 다른 바서하우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 곳에는 정말 훈데르트바서가 가득하다. 바서 그림, 바서의 그래픽, 바서의 건축 모형, 바서의 사진들. 최교수님이 나이를 드시면 훈데르트바서처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관에 가면 사진 전시는 거의 잘 안보는데 훈데르트 바서의 사진들은 이상하게 유심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 할아버지를 정말 알고 싶다. 할아버지한테 매력을 느끼긴 또 첨이네. 정말 예술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 이 할아버지는 나체로 그림 한 점 들고서 유유히 배를 타고 노를 젓는다. 굉장히 진지한데 뭔가 웃겨서 웃음이 낫다.

나는 설계4때 그토록 고민했건만 결국 실현시키지 못했던 바로 그 모델을 쿤스트하우스 빈에서 보았다. 경사진 구릉을 따라 제각기 언덕을 만들며 올록볼록 솟아있는 집들. 땅인지 집인지 자연과 하나된 작은 마을. 나는 안양 화창지구에 어린이가 있는 가족을 위한 단지를 설계하면서 머릿속에 바로 저런 그림을 그렸더랬다. 집이 반지하가 되고 세대수가 얼마 못 들어간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고층으로 갈 수 밖에 없었지만. 도요 이토의 엘크로키를 볼 때도 땅이 그대로 건물이되고 다리가 되는 설계에 나는 빠졌더랬다. 그 결정판이 여기 쿤스트하우스 빈에 있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을 요리조리 들여다봤다. 반지하가 되는건 중정을 뚫음으로서 해결했다. 우리나라는 곧죽어도 남향을 선호하지만 다른 나라가면 그런건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오늘은 정말 너무 재미있다!!

 

U반 4호선을 타고 카를스플라츠역에 내렸다.
어제 저녁에 헤맬 때 지났던 제체시온에 오늘 드디어 간다. 아직 야간열차시 간은 많이 남았는데 날씨가 미치도록 춥다. 민소매에 니트에 청남방에 기모후드까지 입었는데 바람이 네겹 옷을 속속 뚫고 들어온다. 어제까지만해도 참 따뜻해서 나는 반팔에 얆은 가디건 하나만 입고 다녔는데, 비 하나 온다고 이렇게 추워지다니.. 정말 유럽날씨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제체시온 앞은 마땅히 앉을데도 없어서 나는 정류장 맞은편에 서서 스케치를 했다. 하얗고 반듯한 몸에 황금 월계관을 쓰고있는 제체시온.

그 시대에 그 예술을! 그 예술에 그 자유를! 19세기 늘 똑같은 고전풍에 반기를 들고 나선 클림트와 빈 분리파는 제체시온을 설립했다. 이 제체시온 건물은 요제프 바우먼 울브리히가 설계했다. 확실히 클림트와 그들의 그림을 보면 그 바로 전 작품이라는 같은 19세기 그림들과는 너무 차원이 다르다. 이 그림들은 지금 21세기에 그렸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만큼 세련됐다. 그 시대에 그 예술을! 시대가 바뀌면 그 시대를 흐르는 예술의 흐름도 바뀐다. 자연스럽게 바뀌는 예술의 흐름은 누구도 얽매거나 막을 수 없고 그 스스로 자유롭게 흘러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예술을 주고 싶었고, 그 예술에 찬란한 자유를 주고 싶었다. 제체시온 위에 놓인 황금월계관은 새로운 예술에게 바치는 왕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무도 얽맬수 없는 권력을 예술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손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부들부들거렸다. 평소같으면 저 놈에 관광버스가 내 시야를 떡하지 가리고 있지만 않았더라도 제체시온의 전체모습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짜증났겠지만 지금은 추우니까 오히려 고맙구려, 덕분에 밑부분을 그리지 않아도 되오. 그래도 스케치는 꽤 맘에 든다! 후후 제체시온 지하에는 클림트의 베토벤프리체가 있다. 클림트가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듣고 그렸다는 벽화. mp3에 베토벤 5번 교향곡을 담아왔다면 좋았을텐데. 들으면서 그림을 보면 뭔가 더 감상이 오지 않았을까, 아쉽다. 제체시온은 이 베토벤프리체가 거의 다였다. 입장료는 5유로.
지하 계단으로 내려간다. 방 앞에서 클림트의 사진과 제체시온 포스터를 보며 서성서성댄다. 방으로 들어갔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사들이 합창을 하고 남녀가 부둥켜안고 뜨거운 키스를 하고있다. 천사들이 날아가고 시를 읽고 있는 천사. 또 천사들이 날아가고 절망에 빠진 여인. 그 왼쪽에 힘센 왕과 요염한 여인, 또다시 천사들이 날아가고 제일 끝에는 기도하는 사람. 방에 들어서자마자 알수없는 아우라에 휩싸여 찬찬히 심각하게 그림을 훑어봤는데, 땡, 반대로 봤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봐야했다. 글도 왼쪽부터 읽고, 천사들도 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아가고있는데 나는 왜 거꾸로 보고 있었던걸까. 다시다시. 기도하는 사람. 행복을 찾고 싶어요. 천사들이 날아간다. 요염한 여자와 힘쎈 왕. 유혹과 권력이 가로막는다. 절망에 빠진 여인. 천사들이 날아간다. 시를 읽고 있는 천사. 예술 안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다. 천사들이 날아간다. 천사들은 합창하고, 세상을 향해 키스하고 있는 뜨겁게 부둥켜안은 남녀. 이것이 베토벤 프리체다. 세상을 향한 키스. 삶의 환희를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한번, 두번, 세번을 돌아봤다. 물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차마 이 방을 나갈 수가 없다. 나의 삼면을 클림트가 둘러싸고있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정말, 너무, 예쁘다. 그래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 클림트와 함께 이 빈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바람은 불고 있다. 내가 떠남을 빈도 이렇게 슬퍼하는구나. 다음에 꼭 다시 올께. 귀여운 엽서를 사다가 빈 서역에서 파니니를 먹으며 선규에게 엽서를 썼다. 런던에서 엄마아빠한테 쓴 엽서는 아무래도 분실된 것 같다. 내가 우체통이 아닌 다른 엄한 통에 넣어놨나부다. 잉 슬푸당. 나의 첫 엽서였는데ㅠㅠ
선규에게 뭔가 의욕을 불타오르게 해주고 싶은데 누나가 되가지고 그런 좋은말 하나 생각해내지 못한다. 보고싶다 내동생. 파니니 한입 물고 한줄 쓰고, 한입 물고 한줄 쓰는 동안 건장한 남자가 앉아도 되냐며 내 앞에 앉아서 허겁지겁 누들을 먹고 일어나고, 또 다른 아저씨가 맛있어보이는 새우튀김을 들고 와서 먹다가 내 엽서를 보고 알아듣지 못할 영어로 어디로 보내냐고 묻는다. 코리아라고 대답했는데 그 다음말을 도저히 못알아듣겠어서 대충 웃고 얼버부린다.

빈은 정말. 다 좋은데. 입장료와 우표값이 쳐 비싸다. 이것만 생각하면 '나쁜 빈'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야간기차를 타고 베네치아로 가는데 나는 누워서 갈 수 있는 쿠셋이 아닌 앉아서 가는 시트를 예약했다. 빈에서는 입장료로 너무 많은 돈을 썼기 때문에 27유로나 하는 쿠셋과 7유로하는 시트중에 나는 망설임없이 시트를 선택할 수 있었다. 고오맙따 빈...
그래서 나는 11시간 동안 앉아서 야간기차를 타야했다. 서울에서 런던오는 비행기와 맞먹는 불편함이다. 역무원이 내 표를 보고는 정말 정말 정말 주의를 주는거다. 절대 가방을 등에 매지 말고 옆에 두지도 말고 앞에 꼭 안고 있으라고, 한시도 눈에서 떼어놓지 말라며 반복 충고에 충고를 해줬다. 소매치기가 많아서 컴플레인이 많이 들어온다고. 특히 아시아인을 노리니 주의하라며 또 반복당부를 미친듯이 해주었다. 아.. 눈물난다. 고마워요. 긴장되지만 덕분에 긴장해서 짐 잃어버리지 않을께요ㅠㅠ!!
가방안에 넣어뒀던 돈과 여권과 유레일을 모두 몸속 어딘가에 꽁꽁 넣었다. 이걸 넣는 동안 누가 보고있진 않겠지, 주위를 샅샅이 훑어보며. 마치 내가 도둑이라도 되는 양. 가방 쯤이야 잃어버려도 괜찮아. 내 몸만 지키면 돼. 왜냐면 내 몸안에 돈과 여권과 유레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해두니 마음이 편하다. 시간이 거진 되어서 플랫폼으로 가는데 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런던에서 만난 친척사이라는 언니 둘 중 한명이었다. 와 여기서 이렇게 또 만나네 ㅋㅋㅋㅋㅋㅋ 정말 신기방기했다. 런던은 내 여행의 첫 도시이고 내가 파리, 뒤셀도르프, 쾰른, 뮌헨을 돌아 빈으로 오는 동안 언니들은 프라하, 스위스 등을 거쳐 다시 우리는 빈에서 만난 거였다. 여행자들의 루트가 비슷하다 하지만 같은 도시에서 같은 날 이렇게 같은 야간열차를 타고 같은 도시로 간다는 우연이 너무 신기하고 같은 칸은 아니지만 왠지 안심도 되었다. 6석 이등석칸에 5명이 꼭꼭 들어찼다. 젤 구석에 나, 그리고 동남아계 커플, 잘츠부르크로 비즈니스차 가는 것 같은 젊은 여성분, 그리고 자리가 없어서 일행과 혼자 동떨어져 나온 남성분.
 
우리들 중에 아무래도 소매치기스러워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 나는 절대 자지 않으려고 했는데. 혹시나 소매치기가 기웃거리진 않을까 뜬눈으로 새려고 했는데. 너네들 짐 내가 눈뜨고 다 지켜줄께, 하며 마음속으로 같은 칸에 탄 나의 동료들에게 (속으로)얘기했는데. 그래서 일부러 정말 정말 졸릴때 넷북하려고 계속 책읽고 음악들으며 아껴뒀는데. 솔로몬가족 보다가 너무 졸려서 난 자고 말았다. 잔뜩 긴장하고 탔지만 나는 문에서 가장 먼 창가자리이고 내 옆으로 사람들이 꽉꽉 차있고 맞은편 머리위 거울로 바로 내 캐리어가 보여서 안심을 하고 말았다.
모든 아차하는 일은 안심을 하는 그 순간에 일어난다.
근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난코스였던 야간열차도 이렇게 무사히 탔다. 자는둥 마는 둥 불편하게 가다가 새벽 4시 쯤 기차가 잘츠부르크에서 1시간 반을 서 있는 동안, 창밖 너머 건너편 플랫폼에서는 또 다른 기차를 기다리는 커플이 이어폰을 나눠 들으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지루함을 이기기 위함인지 추위를 이기기 위함인지, 어쨌든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마치 스텝업3에 나오는 귀여운 무스와 여자애처럼. 몇 분을 그렇게 서로 마주보며 춤을 추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저 너머 기차 창문 어딘가에서 물끄러미 보고있었다. 너무 보기좋다. 나도 언젠가 저런 예쁜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기차는 다시 출발하고, 나는 불편한 자세로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반수면상태로 4시간을 더 달려 아침 8시 40분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에 발을 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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