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1 스물셋,혼자떠난 유럽배낭여행일기

@1005_유럽여행17, 오스트리아, 빈(뮤지엄콰르티에, 빈 미술사 박물관, 알베르티나 미술관, 게른트너 거리, 성 슈테판 성당)

모나:) 2018. 3. 23. 18:39

10.04

 

 

클림트의 키스가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줄 알았다.

유럽에 오기 전에 읽었던 엘리자베스 히키의 클림트 속 그 그림들의 출처는 빈 미술사 박물관으로 되어 있었다. 어느 적에 클림트가 벨베데레궁으로 옮겨졌는지 모르겠다. 아니, 클림트는 애초부터 거기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클림트가 있건 없건 빈 미술사 박물관은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와 프랑스의 루브르와 더불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엄청난 미술관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내가 찬양해 마지않는 마리아힐퍼 스트라세를 지나 뮤지엄 콰르티에에 도달했다. 뮤지엄 콰르티에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빈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이 마주하고있다. 이 엄청난 미술관들의 포스! 마치 세느강을 사이에 두고 루브르와 오르세가 마주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아우라다.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은 외관이 똑같은 쌍둥이건물. 뮤지엄 콰르티에와 길을 사이에 두고 대칭을 이루고 있으면서 또 얘 자체가 쌍둥이 대칭이다. 신기신기, 이 대칭의 대칭속으로 조심스럽게 걸어들어간다.

빈은 참- 입장료가 비싸지만 어딜가나 입장료 값은 하기 때문에 마음놓고 불평할 수도 없다. 어디서 들은 얘긴데, 프랑스는 소장품이 대부분 약탈품이기 때문에 입장료를 비싸게 받지 못하지만 오스트리아는 거의 대부분의 소장품이 자국의 빛나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입장료가 비싸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있는 다비드를 여기에서 보았다. 카라바조의 초상이기도 한 그 골리앗의 머리를. 골리앗을 이기고도 슬픈 표정을 짓고있는 다비드를. 카라바조는 너무 인간적이다. 어느 것도 신격화 하지 않으며 어느 것도 천대하지 않는다. 나의 '인간적'이라는 말은 진짜 '인간같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물의 표정만 봐도 카라바조의 그림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카라바조는 뛰어난 화가였지만 그의 삶은 불행했다. 그는 생전에 난폭했다고 하며, 그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다른 남자가 프러포즈하자 그 남자에게 폭행을 저질렀다고도 한다. 그는 살인범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내가 본 골리앗의 머리는 그가 그 자신에게 내리는 잔인한 형벌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서 또 다른 골리앗의 머리를 보며, 난 또다시 오늘을 떠올리며 한참을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ㅠㅠ카라바조, 이 비운한 천재같으니.. 화가를 한 '인간'으로서 조금이나마 알고나면 그의 작품이 또 다르게 보인다. 작품은 단지 작품일 뿐, 작가 본인의 인생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예술품으로 생각해야 하는지, 작가의 인생과 결부시켜서 그의 감정과 그때의 상황 등을 함께 생각하며 이해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작가의 인생이 문란했다고 하여 그의 예술 또한 반드시 문란한 삼류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해서 당시의 절실한 상황과 노고, 그리고 그가 그 작품을 만들며 느꼈을 그 순간의 감정을 빼고 보는 감상 또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정답은 없지 뭐, 내가 보고픈 대로 보면 되는 거다. 대부분 카라바조를 설명할 때 난동꾼, 살인자, 폭력성 이런 단어가 항상 뒤따르지만 나는 그의 그림 앞에서 그런 나쁜 단어들은 하나도 떠올릴 수가 없다. 이런게 진짜 뛰어난건가 싶다.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는 원래 워낙 천재니까 와ㅡ 천재, 하며 감탄하지만 카라바조는 아.., 그의 불행한 인생마저도 이런 대단한 작품으로 승화시켜 내다니, 왠지 감정섞인 동정어린 감탄이 되고 만다.

 

빈 미술사 박물관을 나와 보이는대로 걷는다. 요기는 어디지, 길을 잃었다.
빈의 명품거리, 게른트너 거리를 구경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눈 앞에 파스텔톤 꽃이 가득 그려진 계단이 펼쳐진다.

 나도 모르게 그 계단위로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는 알베르티나 미술관. 꽃계단에 이끌려 예정에도 없던 미술관에 입장을 한다. 근데 여기 대박. 어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만 쏙쏙 골라다 모아놨는지! 여길 왜 몰랐을까, 그 꽃계단을 발견한 건 날 이리로 이끈 빈의 게시, 이건 운명이야. 에밀 놀데나 미로, 막스 에른스트로도 모자라, 지하 전시실에는 런던의 사치갤러리에서도 못봤던 게르하르트 리히터, 키키 스미스, 안젤름 키퍼와 데미안 허스트까지 핵심만 쏙쏙 골라놨다. 눈이 핑핑 돌아간다. 어찌 이런 미술관이 있을 수 있는거지? 완전 신난다 신나! 가뜩이나 좋은 빈이 갑자기 너무너무 좋아졌다. 너무 사랑스러운 이 도시. 신나는 기분으로 게른트너 거리를 쏘다닌다. 생각했던 것보다 볼거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마저 모두들 다 즐거워보이고 걸어다니는 사람들도 마치 사뿐사뿐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미쳤나봐, 그냥 나는 빈에 취해버렸다. 오, 내사랑 빈.

 

어느 새 해가 졌다. 내가 스케치하고 있는 성 슈테판 성당도 어둠에 잠겨 디테일을 알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대충대충 슥슥, 마땅히 앉을 곳도 없어 어느 가게 앞 땅바닥에 아빠다리하고 앉아 스케치를 한다. 이럴 때만 나는 건축과 학생. 스케치를 위해서라면 차가운 엉덩이도 다 괜찮다. 더군다나 오늘은 내사랑 빈의 날이니까! 생각해보니 내가 들어가보지도 않은 성 슈테판성당을 왜 스케치했는지 모르겠다. 이래가지고서는 스케치의 의미가 없는건데. 내가 생각하는 '빈'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걸 스케치하려고 했는데, 너무나 상투적인 성 슈테판 성당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내 머리속의 빈의 장면은, 활기찬 마리아힐퍼스트라세나 알베르티나 미술관의 꽃계단이나, 뮤지엄쿼터와 미술사박물관이 마주보고 있는 장면이었어야 했는데.

오늘밤에도 나는 움밧의 미친듯이 시끄러운 로비 한 구석에 앉아 스위스에 있는 세영과 깨알같은 카톡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바로 옆에서 나는 목소리, '혹시 한국분이세요?' 앗! 호스텔에서 처음으로 한국 사람을 만났다! 와! 그렇게 보이지 않던 동양사람, 더군다나 한국사람이, 더군다나 혼자 여행 온 사람이 나를 알아보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반가운 마음에 조잘조잘 작은 수다를 떨며 내일 쇤브룬궁에 같이 가기로 했다. 세영은 외로운 잠을 청하고 나는 여전히 아무도 체크인하지 않은 호스텔 방에 올라와 새벽까지 밀린 빨래를 팔이 저리도록 왕창하고 쏘와 꽁에게 보내는 엽서까지 쓰고 새벽 2시 쯤 잠이 들었다. 사랑스러운 빈. 2년 동안 꼭꼭 닫혀있던 내 마음이 슬금슬금 울렁울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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