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1 스물셋,혼자떠난 유럽배낭여행일기

@0930_유럽여행12, 독일, 뒤셀도르프>쾰른(쾰른 대성당, 콜룸바 뮤지엄, 인젤 홈브로이히 뮤지엄, 랑엔 파운데이션)

모나:) 2018. 3. 22. 15:14

9.30

 

 

 

7시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고 8시에 나가서 9시 까지는 쾰른에 도착하기로 했지만,

계획은 깨지라고 있는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법칙을 충실히 따라 7시 20분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9시에 나가서 9시 50분에 쾰른에 도착했다. 쾰른 역에서 나오자마자, 그 사진에서만 보던 쾰른 대성당이 쾰른!!!!!하며 으리으리하게 서있었다.

 

정말 쾰른 대성당은 '나 쾰른~~!!!~!!!~~!'하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커멓게 쫙쫙 솟아있는 아우라가 엄청나다. 쾰른 대성당을 캐릭터로 만들면 아마 트랜스포머2의 젯트파이어 쯤 되지 않을까 싶다. 뾰족한 수염을 주렁주렁 달고 걸걸한 목소리로 쾨에에엘른~~ 할 것만 같다. 지나가는 분에게 부탁해 쾰른 대성당에서 사진 한장.
콜룸바는 쾰른 대성당에서 매우 가까이 있었다. 피터 줌터가 저 모퉁이만 돌면 있다.
모퉁이를 돌았다. 짠~ 우왓! 콜룸바!!


콜룸바의 가늘고 긴 회색 시멘트벽돌은 있는 듯 없는듯, 거대하면서도 가볍게, 배경에 녹아들 듯한 고요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옛 성당 잔해와 새로운 벽돌과의 만남-.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 따뜻하면서 세련된 만남을 가질 수 있다니. 벽돌을 하나하나 만지니 슬금 웃음이 난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에서는 꽃과 하늘이 나를 감싸안는 기분이었는데, 콜룸바는 시간이 이렇게 바람 감싸듯 감기는 느낌이다. 그냥 내가 그런 식으로 상상했다. 피터 줌터는 감성을 건드리는 건축가다. 신기하게 빌라 라로쉬에서는 공간의 경험은 특별했지만 감성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철저히 이성적이게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변화하는 방식이 형태가 명확한 도형들이 자알 끼워 맞춰져 있듯 명쾌해서 자꾸만 이방 저방 위층 아래층 돌아다니고 싶었다. 그래서 건축적 산책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돌아다니고 싶게 만드는 건축. 하지만 피터 줌터는 내가 마음에 드는 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천천히 그 공간의 감성을 온전히 음미하고 싶게끔 만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KOLUMBA라고 써진 벽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나를 찍어줄 마땅히 괜찮은 사람을 찾지 못했다. 나홀로 여행자는 어디를 가도 인증샷을 찍는게 힘들다.. 너무슬프다ㅠㅠ 나는 이제 길거리에서 혼자 찍는 셀프타이머도 뻔뻔하게 찍는 여자인데, 여기는 카메라를 올려놓을 손바닥만한 공간조차 없다.. 삼각대 같은걸 가져왔어야 했나보다.

 

콜룸바 안에 자리한 작은 채플에 들어간다. 정말 작은 채플. 영롱한 초록의 스테인드 글라스 뒤로 콜룸바의 별빛이 아른아른했다. 촛불 두개에 불을 붙여 하나는 우리가족 그리고 또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했다. 기도라기보단 다짐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촛불 앞에 서니 또 눈물이 나려고하네 ㅠㅠㅠ 훙  혼자 있으니 감수성 폭발이다. 그래도 정말로 물리적인 '눈물'은 아직 안 흘렸다! 아직. 아직 안된다. 이 정도 가지곤. 콜룸바 미술관은 12시부터 입장할 수 있지만 기도도 하고 옛 잔해도 들여다보고 나니 콜룸바를 떠나도 괜찮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결국 셀프타이머로 내가 개미만하게 나온 인증샷 하나를 찍고 나서 쾰른은 이제 바이바이, 노이스로 간다.

 


쾰른 중앙역에서 S반을 타고 Neuss Sud역에 내려서 또 버스를 타고 10여 분 정도를 간다. 이렇게 도심에서 벗어나게 되니 또 롱샹의 뼈아픈 기억이...ㅠㅠ 버스 시간과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다음 홈브로이히의 자연으로 들어갔다.

인젤 홈브로이히 뮤지엄. Insel이 섬이라는 뜻이니까 홈브로이히 섬에 있는 뮤지엄이라고 하겠다. 예전에 NATO 본부가 있었던 땅이었는데 NATO가 해체되고 나서 황폐하게 버려졌다가 어느 부유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센스있는 분이 이곳에 이렇게 자연과 함께하는 뮤지엄을 지어놓았다. '지었다'고 하면 이 뮤지엄에 안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음.. 뮤지엄을 '조성'했다..? '창조'했다..? 고 하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세계 10위 안에는 족히 들 신개념 뮤지엄인데 그 기분이 꼭 미술관에 온 것 같지가 않고 수목원이나 피크닉 나왔다가 우연히 작은 갤러리를 발견한 것 같은 신선한 즐거움이다.

 
날씨가 무척 좋아서 마치 초 여름의 들판에 나온 것 같았다. 자갈길을 따라가다 작은 갤러리가 나오면 스을쩍 둘러보고, 또 좁은 자갈길을 따라가다 붉은 벽돌의 작은 갤러리가 나오면 둘러보는 식이다. 전시된 작품에는 작가 이름도, 작품 제목도 연도도 쓰여있지 않고 단지 그 작품 그 자체. 그 것만 있을 뿐이다. 홈브로이히는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서 개인이 오는 경우는 별로 없고 대부분 단체로 차를 대절해서 많이 오는 모양이다.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갔을 때는 건축과 학생들 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단체로 곳곳에서 디테일 스케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줄자와 각도기를 동원해가며 치수를 재고 각도를 재가며 디테일 하나하나 스케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건축학도인데 스케치하겠다고 스케치북 들고와놓고도 정작 숙소에 놔둔 채 카메라만 들이대고 있으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 졌다. 내가 들고온 '유럽방랑기행'책의 저자도 습관적으로 카메라보다 스케치북이 먼저 튀어나온다는데, 나는 아직도 한참이나 멀었나보다. 정말 맘을 먹고 먹고 먹어야 스케치북을 펼쳐서 선을 하나 그으니 말이다. 내 여행의 목적은 무얼까, 이 질문이 늘 무엇을 보나 어디를 가나 따라 다니지만 답을 얻을 수가 없다.

 

자갈길을 걷고 또 걷는다. 햇빛이 따사롭고 잔디 내음이 물씬난다. 이럴 때 누군가와 손잡고 걸었으면 참 행복하겠다. 엄마, 아빠, 친구, 지금은 없지만 사랑하게 될 사람이라도. 나는 참 잔정이 없는 사람이라 혼자가는 여행도 좋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혼자라는 사실은 이 낯선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던 나를 소심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누군가와 있었으면 아무렇지 않았을텐데, 더 좋았을텐데 하는 외로움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홈브로이히의 카페테리아에 혼자 앉아 단체대학생들 사이에서 빵과 커피를 먹었다. 그것도 잔뜩! 와구와구!


홈브로이히의 경험은 참으로 특별했지만 외롭고 씁쓸함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저 학생들은 저렇게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공부하는데 나는 이곳까지 와서 대체 뭘 보고있는가 에서부터 시작해서 이 좋은 곳을 혼자 걷는다는 쓸쓸함, 돌아가도 나를 반겨주는 건 코골이친구가 있는 덩그런 호스텔침대 뿐인 서러움. 뒤셀도르프는 전부다 너무 좋아서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든다.

 

홈브로이히를 나와 맞은편 랑엔 파운데이션으로 향한다. 내 앞에 한무리가 떠들썩하며 앞서 걸어가고 있고 나는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간다. 정말, 걸어도, 걸어도, 양 옆으로는 눈부신 초록만 있을 뿐이고, 도대체 안도의 건축물은 언제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지쳐가고 있을 무렵, 그 순간에 갑자기, 반듯한 회색 노출콘크리트의 반 원이 나타나고 그 뒤로 그게 있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이. 잔잔한 물위에 떠있는 것 같은 랑엔파운데이션. 갑자기 이렇게 대면할 줄이야. 그리고 그렇게 반질반질한 콘크리트는 처음 만져봤다. 차가운데 메탈처럼 금속성의 차가움이 아니고 육중한 돌의 시원함이었다. 메탈같이 한점 흠이 없는 매끈함이 아니라 구멍구멍으로 숨을 쉬고있을 것 같은 부드러움이었다. 콘크리트로도 이런 부드러움을 표현할 수가 있구나. 단단하면서도 반듯한 부드러움이 있었다. 아 표현을 못하겠다.
시간이 늦어서 그랬는지, 내가 들어설 때에는 바깥에 한 무리가 떠들썩했는데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었고 내 앞에 가던 무리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랑엔파운데이션은 그리 크지 않았는데, 그 램프하며, 떨어지는 빛 하며, 전시실을 조망하는 테라스.. 눈에 꼭꼭 담았다. 카메라는 영원하지만 눈만큼의 기록을 하지 못하므로. 아무도 없는 안도의 미술관을 나혼자서 온전히 감상했다. 일본 미술품은 크게 관심은 없었고 칸딘스키의 작품도 있었지만 건물을 보느라 작품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랑엔 파운데이션 뒤에는 알바로 시자의 파빌리온도 있었는데 버스 시간 때문에 보지 못한게 내내 아쉽다.

 

8시 쯤 숙소로 돌아와보니 내 침대 옆에서 어제 잡지를 보던 곱슬머리친구는 떠나고, 내 락커 바로 옆에 새로운 사람이 잠을 자고 있었다. 뒷 모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외형이었다. 내일 체크아웃 해야하니 미리 짐을 좀 챙겨 놓으려고 일찍 왔는데, 일찍부터 자고있는 친구가 있어서 난감했다. 난 좀 많이 부스럭거려야 하는데. 어쩔수 없이 내일 아침으로 미루고 2층 발코니에 걸터앉아 오늘의 가계부를 정리하고 있자니 프라이데이나잇을 즐기려는 여자애들이 쉴새없이 깔깔거리고 떠들어대며 맥주를 박스 채 방으로 실어나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친구와 눈길을 주고받으며 '흥미로운 밤을 보낼껀가봐, 아마 크레이지나잇이겠지' 등의 얘기를 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피곤하다. 홈브로이히의 카페에서 그렇게 빵을 와구와구 먹고도 돌아오니 배가 고파서 사다둔 와플을 먹었다. 내 방에는 중국인 친구가 9시 부터 정말 미친듯이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그 소리를 듣고있자니 저 친구의 콧 속으로 석탄을 실은 기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는 상상이 들었다. 그 소리가 우리 아빠같은 그냥 크으으으 푸우우우 가 아니라 그르르르렁렁렁드렁드렁 드릉드릉그르르르렁렁 거리는 소리였다. 내 밑 침대의 남자는 아예 방을 나가버렸다. 귀마개라도 가지고 올껄, 믹스룸은 싸지만 이런 점은 안 좋다. 정말 오늘은 최악의 밤이 될 것만 같아... 한숨을 한 세번쯤 쉬고 OMG를 두 번 중얼거리고 한참을 뒤척이다가 임시방편으로 귀에 이어폰을 틀어막고 어찌어찌 잠이 들었다. 내일은 드디어 옥토버페스트가 있는 레겐스부르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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