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8 기타큐슈+후쿠오카

[후쿠오카 혼행일기] @171218, 기타큐슈 1일차 _ 또다시 여행

모나:) 2018. 2. 25. 16:00

 

 

 

 

밋밋한 여행

 

 

퇴사를 했다.
왜? 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말은 없다.
4년을 다닌 회사.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전공과 연계된 안정적인 직장.

퇴사했다고 말하자 모두가 첫 반응으로 '왜?  뭐하게?' 라고했다.
재미가 없어서. 그냥 좀 쉬려고 -
속내를 숨기는 핑계거리 같겠지만 사실이었다. 딱히 퇴사 후 계획도, 당장 하고싶은 것도 없었다.
굳이, 뭘 해야하나 싶은 반발심도 들었다. 열심히 일했는데, 잠깐 좀 쉬면 안되나 정말.

저 직장인 모두의 바람을 내가 이루었다는 쾌감 정도.
속이 엄청나게 후련하지도, 직장에 미련이나 후회가 있지도 않다.
그냥, 그냥 조금 갑작스럽게 방학을 맞은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정말 이렇게 무감각해도 되나 싶을 정도의 밋밋한 기분이었다. 그냥 조금, 이제 앞으로 뭐먹고 살지 하는 막연함 정도가 마음 한켠에 먹구름처럼 끼어있었을 뿐.

'생각 좀 정리하고 올게' 라고 말했지만 정리할 생각따윈 없었다.
바람이나 쐴 겸.. 이라고 생각하며 무작정 표를 끊었다.

혼자서도 언제든지 슝 다녀오기 좋은, 일본. 기타큐슈. 

 

여행 일정도, 누군가가 추천한 맛집이나 쇼핑리스트도 없이 그렇게 비행기를 탔다.

 

 

 

 

 

 

 

기타큐슈 행 진에어는 아침 일찍, 7시 비행편을 제공한다.
천안에서 출발한 나는 새벽부터 차를 달리고 달려 5시 반쯤 공항에 도착했다.
눈이 내리고 있고, 비행장엔 아직 어둠이 짙다.

 

 

 

 

 

 

두시간 반쯤을 날아 기타큐슈 공항에 도착했다.
그새 어둠이 가고 해가 떴다. 조그만 진에어.

 

 

 


ArkBlue Hotel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고쿠라 역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타박타박 걸었다.
내가 예약한 곳은 고쿠라 역에서 도보 10분 정도 떨어진 아크블루 호텔.
호스텔과 호텔을 겸하고 있는 이 곳은 지하층에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 1층 로비 겸 카페테리아,
2층에 공용 키친을 제공하고 있고, 호스텔방과 5층 이상부터는 싱글&더블룸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생 때 같았으면 당연히 호스텔을 이용했겠지만- 

늘 피곤함을 달고사는 직장인 신분을 벗어난지 겨우 일주일, 사람을 대하는 것조차 아직까지 피곤한 나는 싱글룸을 예약했다.

 

 

 

 

 

 

이른 10시쯤 도착했는데 체크인하려면 좀 기다려야해서 짐을 로비에 맡겼다.

 

 

 

 

 

1층 카페테리아를 겸하는 로비에는 음료가 준비되어 있다.
내일 조식도 이렇게 간단한 뷔페식으로 제공된다.

 

 

 

 

2층 공용키친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다.
사람들이 저 테이블 좌석을 많이 이용하는 걸 보니, 참 공간 활용을 잘해놨다는 생각이 든다.
탁 트인 천장, 깨끗한 벽에 상영되는 귀여운 애니메이션 영상, 널찍한 계단에 올라가고싶게 만드는 테이블.

 

 

 

 

 

 

주방 겸 리셉션 데스크.
조식 시간이 아닌 시간에는 커피나 브런치 메뉴를 주문할 수 있어, 카페로 방문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에 프리와이파이가 제공되어
사실상 아무 계획 없이 왔던 나는 기타큐슈에 머무는 이틀동안
오늘 뭐할지 이 로비에서 멍하게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소소하게 걷는 여행,

죠카마치쵸후

 

 

 

 

 

소소하게 조용한 곳을 걷고 싶었다.
일본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 천천히 공기를 마시며 걷고 싶었다.
아까 호텔 로비에서 본 어떤 마을의 사진을 보고 여기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쿠라 역에서 트레인을 타고 시모노세키역으로 간다.
시모노세키역에서 버스를 타고 약 20분 정도 달려 조카마치초후에서 내린다.
일본의 코잔지 사찰이 있는 곳. 작고 조용한 마을.

시모노세키역에서 지역을 한바퀴 둘러 볼 수 있는 버스 1일 패스를 약 700엔에 살 수 있다.
(나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 1번밖에 이용하지 않았다.)

 

 

 

 

 

 

 

아, 이 곳. 왠지 마음에 든다.

 

 

 

 

 

 

 

마을을 가로질러 작은 천이 흐르고, 오리들이 헤엄친다.
꽤나 쌀쌀한 날씨였지만 겨울해가 기분좋게 비췄다.

 

 

 

 

 

저 멀리 산에서부터 흘러왔을 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고, 양 옆으로 작은 집들이 소박하게 서있다.
하늘이 탁 트이고 공기가 맑다. 차가운 공기를 천천히 깊숙하게 들이마셨다.
그러고 보니 세 번째 오는 일본은, 모두 다 겨울이었구나.

 

 

 

 

 

 

작은 카페도 하나 발견해본다.
새하얀 벽에 가로로 난 창이 안을 궁금하게 만든다.
마을에는 주택을 개조한 카페나 레스토랑이 몇몇 있었다.

 

 

 

 

 

 

 

목적은 일본의 국보라고 하는 코잔지 사찰.
지도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길.
굳이 길 끝에 목적지가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길을 걷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고.
사실 이 길, 이 곳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어디든 조용히 사색을 하며 걸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떠나온 여행이었다.

 

 

 

 

 

 

 

 

마을 2/3지점에 있는 쇼잔지 사찰.

 

 

 

 

 

 

중심 사찰을 향해 사선으로 나 있는 길.
왜 저 건물은 정면에서 몸을 살짝 틀어서 앉아 있는 걸까?

 

 

 

 

 

 

 

마을 끝에서 일본의 국보라고 하는 코잔지 사찰을 만난다.
국보라고 하기엔 마을의 작은 사찰 같은 외관이다.
쵸후마을의 영주였던 모리가문은 조선침략의 주범이었다고 하고,
시모노세키의 여러 사찰들이 우리나라 침략에 앞장섰던 인물들을 기리고 있다고 하는데..
역사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명확히 짚고 평화롭게 해결되었으면 한다.

 

 

 

 

 

 

 

 

 

코잔지 사찰 정문 디테일.
나무 부재의 단면을 모두 흰색 젯소 같은 걸로 칠해놓았다.

벌레먹음이나 부패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방법이겠지. 나무 단면의 결이 살아있는 것도 무척 아름답지만 보존은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건축과는 확연이 차이나는 지붕서까래의 모양과 굵기.
우리나라의 서까래는 둥글고 더 두꺼운 반면, 이 곳의 서까래는 훨씬 가늘고 각졌으며 개수가 많다.
마치 나무 루버같은 느낌을 주는, 가벼운 나무 지붕의 느낌.

 

 

 

 

 

 

기둥 밑동에 덧대어진 나무는 보수된 것인지, 애초에 다른 나무였던 건지 궁금하다.

 

 

 

 

 

 

 

 

사찰 뒤로 돌아 올라가면 겨울에도 푸른 산 아래 수많은 비석들이 넋을 기리고 있다.
누구의 비석일까, 우리 조상님들의 원수일까?
정말 많다.

 

 

 

 

 

 

 

 

초후마을을 내려오다가 일본인 친구 2명을 만났다.
지도를 보며 타박타박 걷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가보고 싶은 곳 있냐며 궁금해한다.
가라토 시장에서 초밥을 맛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가라토 시장이 문을 닫는 날이라고 한다.

이제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그들의 차를 얻어타고 시모노세키 구경을 했다.
시모노세키와 기타큐슈 본섬 사이의 바다를 같이 바라봤다.
같이 사진도 찍고 페이스북 친구추가도 했다.
오코노미야끼와 음료수도 얻어 먹고, 기념품도 선물 받았다.

영어나 일본어를 좀 더 유창하게 했었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텐데 아쉬웠다.
아직 이 기타큐슈란 지역에 낯가림을 하고 있는 내게 불쑥 다가온 이 친구들에게
나는 마음을 금새 열지 못했던 것 같다.

정말 정말 고마웠고 따뜻한 친구들이었다.

 

 

 

 

하루의 마무리

 

 

 

 

일본에서의 하루는 역시 온천으로 마무리 해야한다.

결과적으로, 라쿠노유 너무 좋다.
다시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해 기타큐슈를 올 의향도 있다.

 

 

 

 

 

 

모지역 근처의 라쿠노유 온천.
시모노세키역에서 산요 메인선을 타고 모지 역에서 내렸다.
모지역 북쪽 입구로 나와 왼쪽으로 가다보면 몇개의 큰 레스토랑을 지나

주황색 라쿠노유 간판이 크게 보인다.

 

 

 

 

 

자판기가 발달한 나라답게, 이용권도 자판기로-
대인입장권 780엔 이던가... 까먹

사실 이번여행은 하루 일정에 대한 아무 디테일한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온천을 올지도 몰랐다.)
세면 도구라던지 수건이라던지 목욕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우리 나라 대중 목욕탕과는 다르게 수건이 탕 내에 비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온천을 가실 분이라면
물기를 닦을 수건은 꼭 필요합니다..

그치만 너무 좋았다.
겨울 바다가 보이는 온천이라니.
그치만 날이 그새 어두워져서 바다는 그냥 까맣게.. ㅠㅠ잘보이지 않았다.

추운 겨울에 하는 노천온천이 무척이나 좋았다.
따뜻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하늘을 보고 또 바라봤다.

재작년이던가, 주니랑 오사카에 아리마 온센 갔을 때를 생각했다.
그 때는 뭐가 그렇게 마냥 행복하고 지상낙원 같던지-
지금도 그 때와 다르지 않아,
단지 회사 하나 그만뒀을 뿐인데 모든 상황이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사회에서 일을 하고 안하고는
이진법에서 1과 0의 차이만큼이나 크다고.
마냥 즐겨도 모자를 퇴사 후 일주일인데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는 왜일까.
그렇다고 후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 온천물의 연기처럼 훌훌, 마음에 낀 먹구름도 날아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혼자산다에서 이시언은 시즈오카의 온천을 나와 바나나우유를 뽑아 먹으며 감탄을 한다.
짱구에서 나왔던 그 우유라며 ㅡ.
아 이거 나도 먹어볼까? 바나나맛 요거트맛이 나는 우유. 120엔
캬 역시 맛있다.
병이 너무 귀여워 챙겼다.

 

 

 

 

 

 

다시 고쿠라 역에 도착하고. 오늘 저녁은 뭘 먹지?
역시 아무 계획이 없다.

 

 

 

 

 

 

고쿠라역 큰길에서 한블록 뒤로 들어간 뒷길.
퇴근한 일본 직장인들이 많이 식사와 술을 하는 거리인 것 같다.

싸고 괜찮아보이는 아무 라멘집에나 들어갔다. 로쿠노야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식당이었다.

 

 

 

 

 

 

 

텍스 포함 650엔에 직원이 추천해준 메뉴를 시켰다.
오늘 하루종일 걷고 온천도 한 탓인지 배가 고파서 밥과 교자 3피스가 함께 나오는 세트를 주문했다.

 

 

 

 

 

 

앞이 막혀있는 자리.
일본엔 이런 식당이 많아서 혼자 밥을 먹어도 안정된 느낌을 준다.

 

 

 

 

 

 

 

배가 고파 먼저 먹다가 중간에 찍음..
차슈 2장이 들어있는 기본 라멘. 다시마...? 같아 보이는 갈색 줄기는 맛이 없어서 빼놓았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다시 돌아간 호텔에서는 내가 예약한 싱글룸 대신, 침대가 두 개 있는 넓은 더블룸을 주었다.
싱글룸도 괜찮은데... 어쩐지 넓은 방이 조금 외로웠다.
돌아오는 길에 산 편의점 캔하이볼은 맛이 없었다.

내일은 후쿠오카로 간다.

후쿠오카에서는 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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