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1 스물셋,혼자떠난 유럽배낭여행일기

@1027_유럽여행37, 스페인 마드리드 (아토차역, 까익사포럼, 프라도 미술관)

모나:) 2018. 4. 20. 12:34

 

 

10.27

 

 

나의 짧고도 길었던 여행은 이제 정말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내일 모래면 내가 한달 반을 머물렀던 유럽을 떠나 다시 내 나라, 우리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바르셀로나도, 내 마지막을 함께 해주는 마드리드도 안녕. 하루하루 지날 수록 자꾸만 자꾸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여행 중반 이탈리아를 여행할 땐 지치고 힘들어서 여행이고 뭐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렇게 막상 떠날 때가 되니 아, 아숩다. 이제 돌아가면 언제 또 내 인생에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23살의 대학생인 나, 1년을 휴학하고 6개월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9월에 비행기를 탄 나. 6개월을 모은 돈은 한달 하고도 2주의 여행기간 동안 턱없이 부족했고, 매일을 호스텔에서 주는 무료 아침식사와 식빵조각으로 떼우며 그래도 즐겁다고 이 도시 저 도시 이곳저곳을 쏘다니던 나. 건축을 전공하며 진정한 나의 꿈을 찾겠다고 호기롭게 혼자 여행을 한 나. 그래서 나는 무엇을 찾았을까? 다만 알수 있다. 확실히 나는 여행 전과 다른 사람이다.

 

오늘도 여유있게 길을 나섰다. 마드리드에 처음 도착해서 나를 맞아준 아토차역을 다시 구경하러 간다. 라파엘 모네오의 작품인 아토차 역. 지금 마드리드는 비가 흩날리고 있다. 품위있는 우아한 돔이 예쁘다. 내부에는 실내 정원이 역을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냥 작게 조성해놓은 플랜테리어가 아니라, 정말 정원스럽게 꽤나 울창하다. 작은 연못에는 남생이들이 헤엄치고 있었고, 아토차 역의 역사와 스페인 철도에 대한 기록물이 전시되어 있다. 실내 정원을 둘러보다 자연스럽게 기록물에 눈이 가게 되는 동선이다. 기차역도 멋진 볼거리가 될 수 있다. 아토차역의 외부에는 거대한 어린아이의 두상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어쩐지 무섭기도 한 그것은 왠지모를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고 있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슬퍼보였다.

 

비가 그치고 해가 조금씩 나고 있다. 기분이 좋은 날. 유럽 여행에서 비가 내린 날은 훈데르트바서로 가득찼던 빈에서의 하루,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눅눅한 츄러스를 먹었던 하루, 그리고 오늘. 나머지는 모두 날씨가 너무 좋아서 참 감사했다. 그치만 비 내리는 오늘도 참 감사하다. 내가 호주에서 공부할 때, 내 선생님이셨던 Mr. Snell은 항상 비가 오는 날이면 Rain is a gift라고, 비가 온다며 짜증내던 나에게 말하곤 했다. 그러고는 Mr.Snell은 대머리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좋게 비를 맞으며 퇴근을 하곤 했다. 내리는 비를 보고있으니 그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도 이 맘 때 쯤이었던 듯 싶다. Mr.Snell은 잘 지내고 있을까? 스스로 자처한 마무리 공부를 피곤한 기색 없이 꼼꼼히 봐주시던 분. 18살이었던 그 때, 내가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주위 어른들은 모두 건축쟁이는 힘들다며 만류했었다. 유일하게 멋있다고 해주셨던 분. 내가 한국에서 건축가는 3D(Dangerous, Difficult, Dirty)직업이라고 하자, 눈을 동그랗게 놀라며 본인 생각엔 3R인 것 같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셨던 분. Respect, Rich but Really working hard.. ㅎㅎ 다시 만나면 건축공부를 하고 있는 날 자랑스럽게 여겨주실까? 그 분의 응원이 나에게 이렇게 힘이 되었다는 걸 아실까.


까익사포럼엘 간다. 라파엘 모네오에 이어 이번엔 헤르조그와 드뫼론의 건축. Vertical plant로 유명한 그 까익사포룸! 이 곳, 완전 좋다. 떼오띠우아칸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오래된 Asian Culture에 관한 전시였다. 깊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흥미롭게 감상했다. 까익사포럼은 어디서나 와이파이가 빵빵. 초록초록한 외벽은 단정한 벽돌과 붉은 메탈라스스킨과 재료적으로 대비를 이루며 어우러졌다. 와, 이런건 처음 본다. 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결국 찍지 못했다. 까익사포럼의 1층에는 기념품과 건축서적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헤르조그 앤 드뫼론의 엘크로키 발견! 흑흑 사고싶다 ㅠㅠ... 하지만 내 다 떨어져 가는 캐리어는 감당하지 못하겠지...? 너무너무 사고싶었다.

 
4시 반. 프라도 미술관은 6시부터 8시까지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나는 6시 입장을 기다리며 프라도 주변 공원을 산책했다.
비가 또다시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프라도 앞 버스정류장에 앉아 비를 피하며 음악을 들었다. 

 

오늘의 선곡은 Is it any wonder - keane

I always thought that I knew

I'd always have the right to be living in the kingdom of the good and truth

It's on but now I think how I was wrong

and you were laughing along

and now I look a fool to thinking you were wrong

My sight

is it any wonder that i'm tired

is it any wonder that I feel uptight

Is it any wonder I don't know what's right


내 이어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의 비트에 맞추어 빗방울이 웅덩이 위로 타닥 타닥 떨어진다. 가을의 플라타너스 잎이 팔랑팔랑 떨어져 아스팔트 위를 흐르는 빗물에 씻겨 내려간다. 사람들의 발이 참방참방 웅덩이를 밟으며 지나가고, 빗방울 비트에 탬버린처럼 어우러진다. 37번, 27번, 10번 버스가 몇 대나 지나가고, 나는 정류장에 앉아 1시간이 넘도록 내리는 비를,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웅덩이 위로 비트에 맞춰 춤추는 빗방울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뛰어와서 잠시 비를 피하다가 떠나고, 잔뜩 움츠린채 버스에서 내려 얼른 우산을 펴서 스쳐가고, 달려와서 몸을 한번 부르르 떤 다음 버스를 타는 모습들을 보며. 드가의 생동감있는 크로키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눈에 담으면서.

거짓말처럼 내가 일어나야 할 6시가 되자 비가 그치고 해가 떴다. 이미 프라도 미술관 앞에는 입장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2시간 동안 열심히 돌았지만 이 드넓은 프라도 미술관의 반도 채 못보고 8시가 되어 미술관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카라바조는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1시간 기다리길 잘했다. 내일도 가야할 것 같다. 프라도를 보고 나오니 그래도 어제보다 오늘은 뭔갈 했다는 뿌듯함에 호스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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