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1 스물셋,혼자떠난 유럽배낭여행일기

@1004_유럽여행16, 독일-오스트리아 (레겐스부르크>빈, 움밧 The Base, 빈 시내구경, 마리아힐퍼 스트라세)

모나:) 2018. 3. 23. 16:49

10.04

 

 


레겐스부르크-빈

화려했던 옥토버페스트의 밤도 어느새 어젯밤이 되어 버렸다. 시간 참 빠르네. 푹 자고 일어나서 삐걱대는 호스텔 2층 침대에 누워 어젯밤을 생각했다. 어제는 냄새나는 기차 화장실 앞에 서서 한 시간을 달려 새벽 두시에 슬금슬금 기어들어와 조용히 씻고 잤다. 알콜이 들어가니 새벽 2시에 남의 나라 길거리를 돌아 다녀도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밍기적 밍기적 침대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피곤피곤. 오늘은 나의 로망 빈으로 가는 날인데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천천-히 일어나 천천-히 준비를 하고 천천-히 짐을 싸서 나오니 11시. 11시 27분 기차를 탄다. 세영은 12시 40분 기차를 타고 스위스로 간다고 한다. 나는 파리에서 뮌헨으로 세영은 런던에서 뮌헨으로 와서 우리는 뮌헨에서 잠시 만났다가, 나는 빈으로 세영은 스위스로 또다시 각자 떠난다. 이렇게 잠시 잠시 만난 사람들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날 수 있기는 할까? 요즘같은 시대에 카톡과 전화와 문자로 연락해서 만날 수 있긴 하지만 사실 개인의 그럴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발달한 통신기술이 무슨 소용. 이런 하나하나의 인연들을 소중히 생각할 줄 알아야 할텐데. 나는 혼자 잘나고 도도한 척 해서 사람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 혼자 다녀보고 외로움도 타보니 사람 소중한 줄 알겠더라. 근데 또하나 뼈저리게 느낀게 또 있다. 사람도 정말 '사람나름'이고 그게 흔치 않다는거.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건 너무 어렵당ㅠㅠ 흑흑 이것도 내가 혼자 잘나고 도도한 척 해서 그런걸지도..

 

빈.
나의 로망.
클림트를 읽고 내가 얼마나 빈을 가고싶어 했는지. 그 도시를 지금 가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빈에서 호스텔은 그 유명하다는 움밧의 체인1호점. The Base. 빈 서역에서 시내 반대방향으로 7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골목 안 쪽에 있다. 빈도 내가 도착한 오늘은 날씨가 좋다. 여행한 이후로 정말 날씨가 안 좋은 날이 없다. 이거슨 하늘의 계시! 내 여행을 응원해주고 있는 것 같다!


Free-Drink 쿠폰과 방 열쇠를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6층 6인실 여자도미토리인데 들어가니 나밖에 없다!! 와우!!! 침대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1층에서 잔다! 오예!!!! 방 안에 샤워실도!!! 천국은 따로있지않다. 내가 내 짐을 마음대로 늘어놓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 내 몸을 뉘일 수 있는 혼자만의 공간이 있다면, 거기에 샤워실까지 딸려있으면 그 곳이 바로 천국이리니..


창가 쪽 좋은 침대에 자리잡고 짐을 풀었다. 이 방 꽤나 좋아서 테이블에 개인락커에 심지어 전신거울까지 있다. 더 좋은건 18유로밖에 안되는 방이라는 사실! 18유로 내고 나는 6인실 룸을 혼자 호텔처럼 쓰고있다. 후후후후후후루후루 역시 나의 로망 빈은 도착하는 순간부터 나를 저버리지 않았으. 그런데. 치명적인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와이파이가 ... 안된다.
6층이라 그런지 와이파이가 잘 안잡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아예 잡히지조차 않았다.
ㅎㅏ................................ 완벽한 천국은 없다.
천국의 필요충분조건은 빵빵한 와이파이이거늘. 내가 이 방을 혼자 쓴 들 무엇하리, 와이파이가 안 되면 할 수 있는건 찌질이같이 앉아서 일기쓰는 일 밖에 없는데!!! 치명적이었다. 정말 치명적이었다. 우선 나는 빈에서 베네치아 가는 야간열차를 검색해서 예약을 해야했고, 무서우니까 같이 야간열차를 탈 동행도 구해야했고, 베네치아 숙소도 아직 잡지 못했는데 와이파이가 안된다니. 우어우어. 이 모든 중요한 일들을 내 침대에서 할 수가 없고 1층 로비까지 쓰레빠끌고 넷북 덜렁덜렁 들고 내려가서 그 떠들썩함 사이에서 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피곤한 것 같다. 그래도 유럽와서 처음으로 혼자쓰는 방에 짐 늘어놓고 편안히 누워있으니 아, 나른하고 이대로 잠들고만 싶다. 그래도 이 시간이 좀 아깝다.


옷 갈아입고 저녁 빈 시내구경을 하러 호스텔을 나섰다.

필름페스티벌을 한다는 시청을 찾아가봐야지. 오늘은 나의 일정표에도 천천히 시내구경하며 현지인처럼 쉬기!(필름페스티벌)이라고 써있으니 나는 철저히 그 일정을 따라야한다. 내가 짠거니까 크크. 나는 Parliament를 보고 시청인줄 알았다. 정말 멋있었다. 겉만 화려함이 아니라 무게감있고, 단정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빈에 있으면서 계속 내가 느낀건 '고급스러움'이었다. 파리에서도 런던에서도 '고급스럽다'고는 느끼지 못했는데 빈에서는 새삼 그 표현이 늘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내가 갔을 땐 딱 저녁 어스름이 지는 시간이었는데, 분수가 있는 새하얀 신전같은 건물 양 옆으로 콩고드광장에서 본 그 타원형의 램프가 멋있게 오르고 있다. 어디선가 검은 말 두필이 끄는 마차가 다그닥 다그닥 램프를 타고 달려와 거대한 기둥 앞에 서면 곱슬머리의 흰 토가를 입은 사람이 내릴 것만 같았다. 엥, 빈인데 왠 토가.. 로마도 아니고. 그치만 분위기는 그랬다. 나는 여기가 시청인 줄 알고 한참을 서성이며 셀프타이머로 이젠 민망함도 넘어선 셀카를 찍어대며 놀고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필름페스티벌을 벌일 만한 광장이 없었다.

시청은 그 옆에서 더욱더 웅장한 고딕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는데 나무에 가려 못 본거다. 양식은 고딕이지만 지은지 100년도 채 안되었다는 시청. 해가 지고 조명이 비추어서 그런지 정말 예뻤다. 시청 앞 공원에는 떠들썩한 뭔가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음식을 먹고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악기가 저절로 연주를 하고 불빛들이 반짝였다. 필름페스티벌인지는 모르겠는데 서커스 천막이 많이 쳐져있는걸로 보아 그 안에서 무슨 공연이 있는 것 같았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것 같아 분위기만 보고 나왔는데 급 부러움이 일었다. 아.. 광장이 그리 크지도 않고 공연을 엄청 보고싶은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그 분위기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그림으로 치자면 르누아르의 그림 한 점을 온몸으로 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었다고 하면 조금 표현이 가능하려나.

 

빈에는 정말 내가 3일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간 곳이 있는데 바로 BILLA다. 한국으로치면 롯데마트 쯤 될까? 여기는 정말 정말 정말 좋은게 있는데 푸딩이 0.30유로밖에 안한다는 거다ㅠㅠㅠ 레겐스부르크에서 처음먹고 반해버린 나의사랑 푸딩푸딩. 레겐스부르크에서부터 푸딩은 정말 원없이 먹고있다. 달콤부드러우니 내 혀와 맘을 살살 녹인다 어흑. 초코도 맛있고 바닐라도 맛있고. 정말 맛있는건 푸딩 위에 생크림이 얹어져 있는데 그게 아주 그냥 ㅠㅠㅠ 나 원래 한국에서는 생크림 안먹는데 말이지. 여기선 말이지. 단게 너무 맛있어서 매일매일 먹고 한국에 백개 쯤 사가고 싶다. 한국 돈으로 치면 500원인데ㅠㅠ 아.맛.잇.따

 

의회랑 시청이랑 빈 대학을 둘러보고 마리아힐퍼스트라세를 따라 곧장 쭈욱 걸으면 빈 서역이라 돌아오는 길은 걸어오기로 했다. 근데 또 이 마리아힐퍼스트라세가 범상치가 않아서 이 길이 그냥 길이 아니었다. 정말 온갖, 온갖 것이 다 있는, 가이드북에도 안 나와있는 번화가 중의 번화가였다. 브랜드 옷매장은 물론이고 카페, 젤라또가게, 맥도날드, 기념품샵, 케밥집, 스시집, 누들집, 카페, 빵집, 여행가방매장, 잡화점, 술집, 클럽, 보석가게, BILLA, 화장품샵, 은행, 우체국, 디자인샵까지 정말 없는 가게가 없었다. 걸어오면서 싸고 괜찮은 캐리어도 봐두고(내캐리어가 부서져가고있다), 화장품가게에서 2유로도 안하는 샴푸도 하나 사고, 빌라에서 푸딩이랑 음료수도 사고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오면 어느새 서역에 다다른다. 꽤 짧지 않은 거리임에도 워낙 사람도 많고 볼것도 많아서 휘둥그레 걸으면 서역이다. 3일 동안 언젠간 저 케밥집에서 팔라펠을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결국 한번도 먹지 못한 그 집도 마리아힐퍼스트라세에 있다. 그리고 빈에 있는 동안 호스텔과 시내를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을 해 준 길이기도 하고, 내가 적어도 하루에 오며가며 2번은 꼭 지나간 길이다. 그렇게 치면 6번은 지나다닌 것 같은데 갈 때마다 재밌고 익숙하면서 새로운 길이 마리아힐퍼스트라세다. 가이드북에는 보행자 번화가로 게른트너 거리가 나와있지만 게른트너 거리는 명품샵과 카페만 즐비할 뿐, 나같은 가난한 여행자는 그림의 떡이다. 정말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곳은 요 길이다. 이 길이 아니었다면, 이 길이 재미없는 길이었다면 내가 감히 빈을 걸어다닐 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른다. 찬양찬양.

 

BILLA에서 식빵이랑 쵸코잼이랑 물이랑 또 푸딩을 3.65유로에 사가지고 들어왔다. 나의 3일 아침과 점심을 책임져 줄 식빵과 쵸코잼이다. 맨날 이런 것들만 먹고 돌아다녀도 신난다. 지금 계산해보면 그 (내일먹을)피쉬레스토랑에서 18유로를 쓰지 않았다면 3일 밥값으로 13유로만 쓸수도 있었다. 그리고 삼일 밥값치보다 더 비싼 값을 그 생선 튀김과 볶음밥에 써버리다니 지금 생각해도 후회막심이다. 으아.

 

오늘 내 방에는 아무도 체크인하지 않았다. 오예.
오랜만에 느긋하게 씻고 1층 로비에 내려가 인터넷을 하려는데 아... 밤에는 움밧의 그 유명한 Bar가.....시끌벅적 여기도 흥 저기도 흥. 엉덩이도 차가운 1층 계단에 앉아 쪼그리고 인터넷을 하려니 여기는 절대 천국이 아니다. 으. 심지어 인터넷도 느리네. 한시간을 낑낑대다 엄마한테 메일쓰는 것도 포기하고 열차시간만 확인하고서 방으로 올라온다. 그래도 처음으로 혼자 쓰는 방에 맘 푹놓고 자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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