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11 스물셋,혼자떠난 유럽배낭여행일기

@1001_유럽여행13, 독일, 뒤셀도르프>레겐스부르크 (기차 이동, 레겐스부르크 호스텔)

모나:) 2018. 3. 22. 15:41

10.01

 

 

아침 일찍 짐을 싸고 레겐스부르크로 가야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 방 친구들은 왜 이렇게 안 일어나고 밍기적 자고있는거야 나 부시럭부시럭 짐싸야 되는데?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뒷모습의 그 사람은 어제 저녁 8시부터 자고 있더니 오늘 아침 9시가 다 되도록 잠을 자고있다. 도대체 뭐하는 애야.. 새벽에 나갔다 왔나??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내 아래 덩치가이의 침대 밑에는 다 마신 병맥주가 무려 8병이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방의 꼬질꼬질한 냄새는 다 저기서 나는게 분명하다. 캐리어랑 짐을 다 들고 방 밖으로 나와서 난 결국 화장실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부시럭부시럭 짐을 쌌다.


나는 이제 나에게 스윗소로우를 남긴 이 도시 뒤셀도르프를 떠나 레겐스부르크, 뮌헨으로 간다. 친절한 리셉션오빠도 안녕, 그곳에는 분명 크레이지한 옥토버 페스트가 기다리고 있겠지!! 옥토버 페스트가 열리는 기간의 뮌헨의 방값은 정말 헬이다. 그래서 나는 뮌헨에서 기차로 한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 레겐스부르크에서 머물기로 했다. 학교 다닐때도 지하철타고 1시간 통학했는데 뭐 기차 1시간 쯤이야! 백패커를 나와 뒤셀도르프 중앙역으로 향한다. 어제도 잘만 걸어다녔는데 왠지 캐리어를 끌고 가려니 길이 헷갈리네. 결국 어느새 다른길로 들어와버렸다. 물어물어 가면 역이 없다? 또 물으면 반대쪽으로 가란다. 아니 나는 분명 가르쳐준대로 왔는데 이건 뭔 시츄에이션, 분명 이 길치가 역을 코앞에 두고 헤매고 있는게 분명하다.
여유있게 시간을 두고 나왔는데 완벽히 time is running out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24분 기차를 타야하는데 18분.. 19분, 그제서야 어제 우표를 산 우체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20분. 여기서 두 블럭은 더 가야 중앙역이다. 21분. 또 기차를 놓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상상이 들었다. 22분. 캐리어를 끌고 또 달렸다. 23분. 흘러내리는 백팩의 어깨끈을 주섬주섬 올리며 자꾸 기울어지는 캐리어를 바로 잡아가며 미친듯이 달려서 겨우 1분을 남기고 기차를 탔다! 이번엔 나의 승리다. 우하하!

 

자리를 잡고 앉아 선규랑 아빠한테 문자를 보냈다. 이미 내가 여행을 떠나온지 2주가 다되어 가는데 아빠한테 연락 한번 하지 않은 거였다.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울컥할 때마다 참았던 눈물이 아빠의 답장을 본 순간 쏟아졌다. 옆자리에는 일본인아주머니께서 여행 가이드북을 보고 있었다. 우는게 왠지 창피해서 창밖을 보는척 슬쩍 눈물을 닦았는데 또 나서 또 슬쩍 눈물을 닦고 또 슬쩍슬쩍 닦았다. 아. 정말 절대 울컥은 해도 울지는 않기로 했는데 아빠 때문에 실패다. 한달 후에 아빠를 보면 또 눈물이 나겠지. 힝. 자꾸보면 아주 엉엉 울 것 같아서 핸드폰을 집어넣고 딴 생각을 했다. 옥토버페스트 생각을 했다. 지금은 울지마, 이따 숙소에가서 잘때 울어야지.

프랑크푸르트에 내렸다. 환승시간이 9분 남짓이었는데 아주 편하게도 같은 플랫폼이어서 내린 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기차가 오지를 않았다. 전광판에는 replacement IC27어쩌구 라고 써 있었다. 내가 타야될게 IC27인데 뭐지..? 도대체 뭐지.. 또 불안해졌다. 불안해서 옆에 머리가 긴 독일남자분한테 물어봤는데 여기가 맞다고 했는데도 불안했다. 기차는 무조건 불안하다. 맘놓고 있다가 언제 어디서 놓칠지 알수가 없다. IC27이 다른 기차로 바뀐다는 소리같았다. 일단 사람들이 다 타길래 나도 따라 탔는데 중간에 어느 역에서 사람들이 몽땅 내리는 거였다. 눈치껏 보고 따라 내려서 사람들 다 타는 기차로 나도 갈아탔더니 맞는 기차였다! 이히! 역시 느는건 눈치 뿐이다.

내가 탄 기차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레겐스부르크를 지나 빈으로 가는 기차였는데, 짐을 잔뜩 든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다들 빈으로 이민이라도 가는 건가 싶었다. 내가 탄 기차는 예약좌석에는 상단에 예약구간이 적혀있고, 빈 좌석에는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기차였다. 분명 빈 좌석이라 난 앉아있었는데 독일 할머니가 오셔서 당신 좌석이라며.. 예약했는데 안 써져있는 거라며.. 난 쫓겨났다. 다른 칸으로 이동해서 빈자리가 있길래 봤더니 레겐스에서 빈까지만 예약좌석이었다. 나는 레겐스에서 내릴 꺼니까 잠시 앉아있어야지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이번엔 그 옆에 앉아 계시던 독일 할아버지가 너 예약했냐며, 여긴 예약좌석이라며...내가 이래저래 난 레겐스까지만 갈 거라서 잠깐 앉아있는 거라고 얘기했는데, 자꾸 못마땅하신 건지 못 알아들으신건지 나한테 뭐라고뭐라고 하셨다. 결국 옆에 있던 예쁜 독일언니가 독일어로 할아버지께 설명해주고 나한테 앉아있어도 괜찮다고했다. 언니 고마워영ㅠㅠ 기분이 조금 상했다. 내가 외국인이라 그런건지 괜히 자격지심이 들었다. 조금 앉아 있다가 짐도 걱정되고 해서 그냥 일어나 짐짝사이에 서서 한시간 반을 더 갔다. 유레일은 원래 입석티켓이니까..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레겐스부르크.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록되어있다는 고도시. 그런데 나는 이 도시를 둘러볼 여유가 없다. 우선 조금 쉬고 싶었고, 배도 고팠고, 내일 옥토버페스트에 같이 갈 동행들이랑 연락도 해야했다. 레겐스부르크 반호프에서 나와 호스텔을 찾아가는데 유랑에 나와있는 호스텔 가는 길은 정말 하나도 도움이 안됐다. 인포메이션 센터는 어디있는 건지, 도대체 분수대는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분수대는 커녕 물 한방울 튀는곳이 없었다. 고도시라 그런지 꼬불거리는 골목길이 너무너무 많았다.

체크인을 하고 내 침대를 찾았다. 리셉션 직원이 침대를 일러주지 않아서 나는 아무 침대나 고를 수 있었는데 그 방에 남은 침대는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안 일러줬나보다! 또 나는 2층이었다.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2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었지만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형광등이 바로 내 침대 위에서 대롱대롱거리고 있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비몽사몽으로 아무렇게나 몸을 일으켜 앉으면 딱 그 등에 이마를 박게되는 그런 구조였다. 그리고 호스텔을 나올 때까지 아주 조심조심해서 겨우 두 번쯤 박았다. 그것 빼고는 화장실은 정말 괜찮아서 런던, 파리, 벨포르, 트로예스, 뒤셀도르프를 통틀어 최고였다. 와이파이도 너무 잘 터져서 핸드폰으로 DB검색까지 할 수 있었다! 최고! 리셉션과 방이 동떨어져 있어서 키로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고 매우 독립적이고 자유로웠다. 방을 나오면 바로 공용거실과 키친이 있어서 아무때나 마음껏 쓸 수 있었고 역에서도 가깝고, 옥토버페스트 기간임에도 싸고, 뮌헨에서도 많이 멀지 않고 여러모로 아주 괜찮았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남자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말레이시아에서 왔는데 사실 독일에서 공부중이라며, 이번에 레겐스부르크에서 인턴을 하게 되서 방을 구할때까지 여기 있는다고 했다. 압덕?? 비스부리하게 발음한 엔지니어링 라이팅 분야라고 했다. 그리고 이 대화 후로 나는 3일 동안 입을 옷을 미리 챙긴다며 쉴 새 없이 부스럭거렸고 화장실과 부엌과 방을 미친듯이 들락날락했고 하필 내 침대 쪽 콘센트가 안되서 말레이친구 침대 옆 콘센트에서 핸드폰을 충전했다 노트북을 충전했다하며 쌩난리법석을 피웠는데, 눈이 똥그란 말레이친구는 그 모든 모습을 자기 침대에 앉아 눈을 똥그랗게 뜨고 관찰했다. 오며가며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인사를 했는데 한두번 마주친 것이 아니어서 한 다섯번 째 쯤 눈인사를 했을때는 좀 민망해졌다. 와이파이가 아주그냥 빵빵터졌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다 배가 고파서 해가 다 지고 저녁 8시 쯤 호스텔을 나왔다. 이젠 저녁 8시 쯤에 돌아다니는건 하나도 무섭지 않다. 나는 어떻게해서는 샐러드를 사먹고 싶었다. 도대체 샌드위치에 끼워진 양상추쪼가리 말고 제대로 된 야채를 먹어본 지가 며칠이 된건가.. 호스텔 리셉션은 작은 매점을 겸하고 있었는데 둘러보니 손바닥만한 low-fat 요거트를 무려 0.70에 팔고있었다! 와우! 너무 싸! 당장 사! 내사랑 요거트! 요거트를 들고 왔던 길을 따라 중앙역쪽으로 갔다 이 어두운 밤에 내가 알고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고 무섭진 않아도 최대한 안전은 보장해야 하니까. 중앙역에는 꽤 큼직한 마트가 있었는데 한국 마일드라떼만한 컵에 초코푸딩이 무려 0.20유로!! 왕 큰 샐러드가 무려 0.95유로였다!! 내가 유럽도시들을 다니면서 이런 저렴한 가격은 처음 봤다!!


역시 관광도시를 벗어나니 물가부터가 다른 것인가. 뮌헨에서 단지 1시간 벗어나있을 뿐인데 이렇게 싼 가격이라니. 난 당장 기분이 좋아졌다, 으흐흐흐흐 한참을 고민하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샐러드와 초코푸딩을 집어들고서 내 저녁값으로 1.15유로(!)를 지불하고 호스텔로 돌아와 침대에서 책을 보며 와구와구 다 먹었다. 자리잡고 앉으니 대롱대롱 형광등이 제대로 스탠드 역할을 해주었다. 오, 나름 쓸모있어. 이 샐러드가 오늘의 첫 끼인 것 같다. 샐러드 남으면 내일 아침에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얇은 당근 한 점까지 깨끗이 다 먹고 푸딩도 싹싹 다 긁어먹고 low-fat 요거트를 반 쯤 퍼먹다가 너무 배가 불러서 먹기를 그만 두고 샤워를 하고 잠이 들었다. 오늘은 유랑에서 옥토버페스트에 함께 갈 동행도 두 명이나 구했다! 말레이친구가 코를 골았지만 그 뒤셀도르프 중국친구의 석탄기차소리가 아니라 우리 아빠같은 크으으으푸우우우 코골이여서 그럭저럭 거슬리지 않고 잘 잤다.  내일은 뮌헨에 가서 피나코텍 그리고 옥토버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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