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7_유럽여행9, 파리(르꼬르뷔지에 재단, 빌라 라로쉬, 롱샹성당 가는 길)
9.27
아침부터 짐을 싸다 생각해보니 5시에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면 할 수 있는게 없다. 계획 상 암스테르담은 2박 밖에 안하는데 하루는 로테르담에 갔다온다 치면 정작 암스테르담에서는 잠만 잘 뿐 고흐미술관도, 네모사이언스뮤지엄도 결코 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차라리 암스테르담을 과감히 빼버리고 롱샹을 갔다가 뒤셀도르프로 가고싶은 마음이다. 나에게 롱샹은 암스테르담과 충분히 바꿀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암스테르담은 기차예약비가 40유로에 달하기 때문에!!!
당장 몽파르나스역으로 달려간다. 이럴때 필요한건 재빠른 행동력이다. 여행에서 꾸물거리는 것만큼 죄악인 것은 없다. 제발 탈리스예약이 취소가 가능해야할텐데. 나는 예약취소비를 내도 좋으니까 제발 취소해줘. 암스테르담 가고싶지 않단말이야. 기차출발 두시간 전인데 취소가 과연 될까. 초조한 마음으로 줄을 선다. 야호! 취소비 9유로를 내긴 했지만 쉽게 취소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롱샹으로 가는 벨포르행 기차를 4.5유로에 예약했다. 사실상 롱샹을 13.5유로를 주고 가는거였다. 그래도 괜찮아! 아싸! 암스테르담아, 미안하지만 나중에 꼭 가줄게!! 이렇게 일정이 뒤바뀌는구나. 이래서 가면 바뀔거라고 하는거구나. 한국에서 두달 간 열심히 짜온 계획이란건 기차시간이라는 막강한 장애물앞에 힘없이 깨져버렸다.
왠지 홀가분한 마음으로 Jasmin역으로 향한다. 어제 못간 르꼬르뷔지에 재단을 찾아가기로 한다. 짐은 민박집에 맡겨두고 하룻밤 씻을 것만 챙겨가지고 나온다. 꼬르뷔제 재단을 갔다가 바로 벨포르로 가서 하루 묵을 생각이다. 짐 없이 기차탄다는건 정말 얼마나 홀가분한 일인지!
오늘은 르 꼬르뷔지에 재단을 잘 찾아간다. 3유로를 내고 빌라 라로쉬로 들어간다. 내가 사는 도시 가까운 곳에 이런 거장의 작품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정작 김수근선생님 작품에도 아직 가보지 않은 나를 반성하며 라로쉬를 둘러보았다.
빌라 라로쉬는 르 꼬르뷔제가 친구이자 후원자인 라 로쉬를 위해 설계한 '갤러리집'이다. 메인 홀을 사이에 두고 생활공간과 갤러리가 나뉘어져 있고 홀은 이 두 공간을 더블하잇의 높다란 포용력으로 중심 잡고있다. 공간 하나하나 돌아다닐 때마다 신기한 체험이다. 공간을 명확히 구분하는 컬러와 절묘하게 떨어지는 빛. 수직으로 또는 수평으로 흐르는 자연스러운 동선은 '건축적 산책'이라는 말을 정말로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갤러리의 램프는 사실 조금 억지로 끼워맞춘 감이 없지않아 있다. 그림감상을 위한 건축적산책로 치고는 램프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참 놀라운 공간 임에는 틀림없다. 아! 너무 감동적이다!
빌라 라 로쉬의 감동을 뒤로하고 점심 샌드위치를 사들고 TGV를 탔다. 오~ 이 기차 완전 좋네! 내 자리를 찾으려 애쓰고 있는데 프랑스 할아버지께서 유창한 영어로 아무데나 앉아도 괜찮다고 하신다. 감사히 할아버지와 같은 칸에 앉는다. 이 샌드위치는 부드러울 줄 알았지만 바게트와 같은 강도로 뜯어먹어야만 했다. 턱도 아프고 이도 아프고 목구멍도 퍽퍽했다. 런던 이후로 파리에서는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파리에서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적도 없다.(사실 런던에서도 그다지..) 도대체 뭘 먹고 다녔는지 기억도 안나 뭘 먹긴 먹었던거 같은데........
할아버지는 내리시고 나는 아직도 세시간이나 더 가야한다. 기차에 사람이 이렇게도 없다니. 점점 피곤하고 졸린데 창밖은 깜깜해져있고 이대로 졸다가 벨포르에 못내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든다. 벨포르에 내가 묵을만한 호텔이 있긴 할까. 벨포르 도착.
벨포르 역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호텔. 비싸보이니까 패스. 무작정 걷는다. 좀 싸보이는 호텔을 찾아. 왠지 하나도 무섭지 않다. 여기는 내가 완전히 모르는 곳이고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무섭지 않았다. 파리에서는 어설프게 알고 워낙 이방인이 많은 곳이라 되려 불안불안했지만 지금 밤 9시 반에 프랑스 시골에서 호텔을 찾아 홀로 걷고있는 나는 대담하게도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하하! 이런게 진짜 여행인가 싶다. 방이 없어서 결국 역 앞에 비싸보이는 호텔로 들어간다. 리셉션에 젊은 프랑스인이 물론 여기도 방이 없단다. 온 벨포르가 방이 다 찼단다!! 헐.
-오늘밤에 방 있어? 나 혼잔데
-여기 방 없어. 벨포르 전체가 방 다 찼어
-헐. 그럼 나 어떡해?
-음.. 기다려봐 !
여기저기 전화를 건다. 나에게만 특별히 해주는거라며 방이 남아있는 호텔을 찾으려 애써준다. '우리 집에라도 가서 재워주고 싶어!' 비슷한 뜻(잘 못알아들었다)의 말을 해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ㅠㅠ 말이라도 정말 고마워요.. 마침 방이 하나 남아있는 호스텔을 발견! 그런데 걸어가기엔 멀어서 택시를 타야 한다며 택시도 잡아주었다. 리셉션에 프랑스인은 스피드스피드를 외치며 조금 있으면 호스텔 문 닫으니까 빨리 가야한다고 재촉한다. '메르씨' 라고 말했더니 '메르씨 부끄' 라고 정정해주었다. 메르씨 부끄 ! 8.5유로. 5분 동안 탄 택시비. 여기 택시는 안에서는 문을 열 수가 없고 택시아저씨가 내려서 손수 문을 열어주신다. 메르씨 부끄. 부끄부끄. 돈 안내고 튀는걸 막기 위해서인가?
도착한 곳은 hotel F1. 휴 이제 잘 수 있겠구나. 화장실과 샤워실은 쉐어지만 30.30유로라는 생각보다 괜찮은 가격에 나 혼자 꽤나 넓은 룸을 쓸 수 있었다. 방에는 간이 세면대도 있고 티비도 있다. 일단 샤워를 하고 티비를 튼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소리를 키우고 오늘의 가계부를 정리하고 기차 시간을 알아보았다. 눈이 천근만근. 내일은 뒤셀도르프에 가는 열차도 예약해야지. 탈리스는 비싸니까 경유해서 떼제베나 이체를 타고가자.
암스테르담을 제치고 나는 무작정 숙소 예약도 하지않은 채 오직 롱샹을 가기 위해 짐도 버려두고 벨포르로 왔다. 그리고 또 마음 착한 프렌치남 덕분에 그럭저럭 꽤 괜찮은 방에서 잘 준비를 하고있다. 내일은 계획엔 없었지만 너무나 기대되는 롱샹 성당엘 간다. 너무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다가 티비를 끄고 넓은 침대에서 새우잠을 잤다.